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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파고다]20<끝>-④지면을 필름삼아 펜을 렌즈 삼아 다큐 찍듯 썼죠

최종수정 2013.11.29 14:53 기사입력 2013.11.2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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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파고다', 특별취재팀이 28일 본보 회의실에서 취재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부 백소아 기자, 김보경 기자·김동선 부장·주상돈·김민영 기자.(왼쪽부터) 최우창 기자 smicer@

'그 섬, 파고다', 특별취재팀이 28일 본보 회의실에서 취재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부 백소아 기자, 김보경 기자·김동선 부장·주상돈·김민영 기자.(왼쪽부터) 최우창 기자 smicer@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지난 4일 '그 섬, 파고다' 첫 회에 생뚱맞게 피에르 상소(Pierre Sansot)를 언급했습니다. 파고다 어르신들에게서 마주한 '저속(低速)의 미학'이 그의 저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문득 떠오르게 한 때문이었습니다. 그 책은 다음과 같은 머리말로 시작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느린 사람들은 평판이 좋지 못하다. 흔히 느린 사람들은 고집이 세다는 소리를 들으며, 매사에 동작이 굼뜬 데다가 서투르다는 말도 듣는다. 심지어 매우 힘들고 까다로운 작업을 하고 있을 때조차도 워낙 행동이 느려서 그렇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좀 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여유 있는 동작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도 우아함이라고 보기보다는 운동신경이 느리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또 그들은 일을 할 때도 온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대강대강 시간만 때운다는 의심을 받아야 한다."

과연 그분들의 저속(低速)에 현대인의 속도의 자를 대는 게 온당할까요? 노인이라는 메마른 이름으로 불리다가 때가 되면 어르신으로 대접받는 파고다공원 일대의 할아버지들은 두 개의 호칭과 두 개의 시선으로 비쳐집니다. 아니 어쩌면 이곳의 할아버지들은 더 다양한 호칭과 시선이 존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노인을, 노인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시각차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코끼리의 어느 쪽을 보느냐에 따라 달리 표현하는 것과 비슷하겠죠. 한쪽을 부각하면 다른 한쪽이 외면받기 십상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또 어떤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서도 사물은 달라 보일 겁니다.

파고다는 과거를 살았던 분들이 현재의 공간에서 머물고 있는 공간이자 우리의 미래를 예지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사회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모두 투영되고 그분들과 우리의 삶이 만드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도 함께 함축ㆍ응축하고 있는 공간입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우리 사회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짚어보자며 '그 섬, 파고다'를 기획할 때 처음부터 무작정 중후장대한 노인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찾아가며 기사를 전개하는 것도 식상한 측면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대신 우리는 노인문제와 그로 인해 파생된 다양한 담론이 담긴 공간인 파고다공원을 훑어보고 그곳에 있는 사물과 사람 이야기를 소재 삼아 담담히 이야기를 전개하기로 했습니다. 파고다라는 공간이 갖는 상징성과 그 속에 버무려진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담아보자는 것이었죠.
사실 부서 내 취재 기자들의 눈을 피해(?) 파고다공원 일대를 네댓 차례 따로 답사하기도 했습니다. 저녁 약속을 일부러 종로 근처로 잡고 약속시간보다 일찍 사무실을 나서 공원 주변을 맴돌기도 했는데요. 취재기자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어르신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그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조망하는 눈이 데스크에게도 필요해서였습니다. 취재는 현장에서 시작되지만 데스킹도 현장을 떠나서는 안 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일본을 가장 객관적으로 다룬 책으로 평가받는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 그녀는 정작 일본을 한 번도 방문해 본 적이 없고 그래서 "학문적 연구에서 그 대상을 직접 목격하지 않은 쪽이 오히려 엄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평가받는다고 하는데 내게는 그런 혜안도 그럴 자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데스킹을 보면서 취재기자들에게 요구한 특별 주문은 딱 하나였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사투리나 욕을 쓰더라도 그대로 쓰라는 것이었죠. 유려한 미사여구보다 사실적 표현 하나가 있는 그대로의 현장을 생생히 증언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론 자칫 몇몇의 사례가 전체인 양 변질ㆍ왜곡될 수도 있어 사례와 증언들이 침소봉대되지 않도록 애썼습니다. 일부 회차(박카스 아줌마 편)에서는 할아버지들이 저속(低俗)하게만 비쳐지지는 않을지도 점검해야 했습니다.

물론 미디어 이론에는, 기사는 현실을 거울처럼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관점(현실사회 반영론ㆍ거울론)과 현실을 해석하고 다시 규정해야 한다는 관점(현실사회 구성론)이 있다지요. 우리는 어쩌면 이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파고다 일대의 정경을 때론 내레이션 방식으로, 때론 건조한 일반 기사처럼 소재에 따라 다른 글쓰기 방식을 시도해 봤습니다. 지면을 필름 삼아, 펜을 렌즈 삼아 논픽션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는 느낌으로 전개해 본 것이었습니다.

기획을 시작할 때만 해도 더웠던 것 같은데 마지막 회를 정리하는 지금은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입니다. 어르신들이 따뜻한 겨울을 나시길 빕니다. 가깝지만 먼, 낯익으면서도 낯선, 그래서 애잔하면서도 불편하기도 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려 합니다. 그동안 많은 관심을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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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파고다]20<끝>-④지면을 필름삼아 펜을 렌즈 삼아 다큐 찍듯 썼죠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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