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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파고다]4-① 45년간 한평 쪽방서 사는 70세 할아버지

최종수정 2013.11.29 11:20 기사입력 2013.11.0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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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시리즈④ 45년 쪽방살이 朴할아버지와 함께 살아본 하루

한달 생활비 48만원
절반은 월세, 2만원은 저금
"파고다엔 안가…젊은 사람과 어울리고 싶다"


박 할아버지가 자신의 쪽방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박 할아버지가 자신의 쪽방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아시아경제 주상돈 기자, 김보경 기자, 김민영 기자] "'혼자 사니까 저 궁상이다'는 말이 제일 듣기 싫어."

박모(70·서울 돈의동) 할아버지는 노란색 티에 노란 형광색 점퍼까지 차려입고 한껏 멋을 부린 차림이었다. 오른손으로는 등산용 지팡이를 짚었다. 지팡이는 3년 전 고관절 수술을 한 후부터 들기 시작했다. '쪽방에 혼자 살아서 꾀죄죄하다'는 말이 듣기 싫어 이날도 몇 벌 없는 옷 중에서 가장 밝고 깔끔한 옷을 챙겨 입었단다. 할아버지는 혹시라도 옷에서 냄새가 날까 봐 빠듯한 살림에도 빨래를 할 땐 향이 짙은 섬유유연제를 빼놓지 않는다. 매주 목욕탕에 가는 것도 거르지 않고 적어도 석 달에 한 번은 1만원을 주고 염색과 이발을 한다.

지난달 28일 만난 박 할아버지는 쪽방촌의 자타공인 터줏대감. 20대 중반부터 45년째 약 3.3㎡(한 평) 남짓한 크기의 쪽방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박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종로 쪽방촌'에는 현재 650여명이 살고 있다. 이 중 220여명이 박 할아버지와 처지가 비슷한 65세 이상의 노인이다.
[그 섬, 파고다]4-① 45년간 한평 쪽방서 사는 70세 할아버지
파고다공원과 종묘광장공원 사이에 있는 서울 종로구 돈의동 103 일대. 이곳이 바로 '종로 쪽방촌'이다. 6·25 때는 난민주거지로, 전쟁 이후에는 1000명이 넘는 젊은 여성이 '일'하던 대규모 집창촌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이 집창촌이 철거·폐쇄되면서 일시적인 거주 공간인 쪽방촌이 형성됐다. 1968년 10월5일 새벽 5시. 200여명의 철거반이 동원된 철거 작업은 집창촌 정화사업의 마지막 조치였고 이른바 '나비 작전'으로 명명됐다. 윤락녀를 찾는 남성들을 나비에 빗댄 것이다.

박 할아버지를 따라 쪽방촌을 '탐방'해 보기로 했다. 두 사람이 지나가면 어깨가 부딪힐 만큼 좁은 골목길은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박 할아버지가 사는 쪽방 건물 앞에 도착했다. 2층 왼쪽 방이 박 할아버지가 25년째 살고 있는 쪽방이다. 가파른 계단 6개를 기어가다시피 해서 2층에 올랐다. 박 할아버지는 "청소를 안 해서"라고 나직이 말하며 방에 있는 가스버너와 그릇, 숟가락 등을 밖으로 밀쳤다. 아침에 먹은 라면 그릇이다. 먼저 방에 들어간 박 할아버지는 켜켜이 쌓여 있던 이불 3개를 옆으로 밀어 자리를 마련했다. 두 사람이 앉으니 쪽방이 가득 찼다.

서울 충무로에서 태어난 박 할아버지는 6·25 전쟁 때 7살 나이에 고아가 됐다. 피란민을 따라 대구로 내려갔다가 전국의 고아원을 전전했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건 15살 무렵. 충청도의 한 고아원에서 도망 나오다시피 뛰쳐나와 스무 살이 되기까지 파고다공원 뒤편에 있던 낙원시장에서 넝마주이 생활을 했다. 20대에 들어서는 공사장을 돌며 막일꾼으로 살았다. 25살이 되던 해 이 쪽방촌에 들어온 할아버지는 이 동네에서 지금까지 머물고 있다.

나무로 만든 선반에는 텔레비전과 유리 서랍장을 놨다. 나머지 빈 공간에는 테이프와 화장품, 휴지, 치약, 모기향, 비누갑 등이 자리를 잡았다. 바닥에는 냉장고를 놓고 그 위에 보온밥통과 양은냄비 2개, 냉면 그릇, 숟가락과 젓가락, 행주 등을 올려놓았다. 간이 주방인 셈이다. 냉장고 안에는 고추장과 계란 3개, 김치가 들어있었다. 김치는 일주일에 한 번 근처 반찬가게에서 3000원어치씩 사다 먹는다. 옷은 벽에 못을 박아 만든 옷걸이와 빨랫줄을 이용해 걸었다. 한쪽 벽면에는 A4용지 크기만한 거울을 붙였다. 그 앞에는 천식약과 관절약, 혈압약, 빈혈약 등 각종 약통이 놓여 있었다.

이렇게 쪽방 안을 잠시 둘러보고 있을 때 갑자기 밖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니X 관리하는 인간이 말썽 피우지. 우리 집 사람들이 생전 난리 치는 거 봤어? 그러게 내가 저 사람 애초에 받지 말자고 했지." 두 여인이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드잡이를 하고 있었다. 쪽방 관리인들끼리 싸움이 붙은 것이다. ○○댁이 관리하는 쪽방에 사는 남성이 주폭이라 술만 마시면 말썽을 부리는 통에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주변에 섰던 사람이 두 사람을 떼어놓지만 삿대질을 하면서 서로를 향해 달려든다. 한낮의 소란에 쪽방에 있던 사람들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내다본다. "거 조용히 좀 합시다. 허구한 날 쌈박질이야." 다닥다닥 붙어있는 쪽방에 살면 이렇게 듣기 싫은 욕도, 보기 싫은 소동도 어쩔 수 없이 공유해야 하는 것일까. 전선을 빨랫줄 삼아 널어놓은 누런 속옷은 축 늘어져 아무렇지 않게 볕을 받고 있었다. 박 할아버지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를 다시 풀어갔다.

지난달 30일 서울 돈화문로 9가길 해가 어스름해질 저녁 6시쯤 빨래를 걸어놓은 2층 쪽방 창문에서 빛이 희미하게 켜져있다. 백소아기자 sharp2046@

지난달 30일 서울 돈화문로 9가길 해가 어스름해질 저녁 6시쯤 빨래를 걸어놓은 2층 쪽방 창문에서 빛이 희미하게 켜져있다. 백소아기자 sharp2046@


박 할아버지는 3년 전 가을 악성 빈혈로 쓰러지는 바람에 고관절이 부러져 지체장애 5급 판정을 받았다. 이때부터 지팡이를 짚고 있지만 매일 아침 산책을 거르지 않는다.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자꾸 움직여 줘야지"라며 이때가 하루 중 가장 즐겁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매일 오전 4시30분에 일어나 5시쯤 집을 나서 삼청공원을 찾는다. 박 할아버지 걸음으로 공원까지는 꼬박 1시간이 걸린다. 운동 이외에도 할아버지가 삼청공원을 찾는 이유는 또 있다. 박 할아버지는 "가면 동네 여자들 클럽이 있다고. 같이 커피도 마시고 농담 따먹기도 하고"라고 말하며 연신 웃음을 짓는다. 할아버지의 양손 손톱에 들인 봉숭아 물도 주인 아줌마의 작품이다. 아침은 헌법재판소 근처에 있는 해장국집에서 해결한단다. 가끔은 삼청공원을 내려온 주인 아줌마가 사주기도 한다. "그 아줌마들 처녀 때부터 알고 지냈으니까 알고 지낸 지 꽤 됐지. 이제는 다 친구야."

8시쯤 쪽방으로 돌아온 박 할아버지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서 다시 나갈 채비를 한다. 주로 동묘 앞 풍물시장을 찾는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청계천으로 내려온다. 동묘 앞에서부터 청계천을 거슬러 종로까지 걸어온다. 지팡이에 의지한 느릿느릿한 걸음 탓에 오후 4시나 돼야 쪽방으로 돌아온다. "낮에는 방에 못 있어. 심심하고 적적하잖아. 죄 없는 텔레비전만 봐야 하는데 그게 제일 싫더라고."

박 할아버지는 또래 할아버지들이 모이는 파고다공원이나 종묘광장공원은 거의 가지 않는다. 이유를 묻자 "가봐야 전부 노인네들뿐인데 거길 왜 가. 내가 나이가 들었어도 젊은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싶다고. 사람들은 다 그렇지 않나?"라고 반문한다. 또래 할아버지들과 마주쳐도 인사를 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반면 50~60대에게는 "뭐가 그리 바쁜가?" "별일 없어?"라며 먼저 말을 건다.

박 할아버지는 기초생활수급비 45만원과 장애인수당 3만원을 합해 48만원으로 한 달을 난다. 하루 8000원꼴로 한 달 쪽방비 24만원을 내고 나면 딱 반이 남는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꽤 알뜰한 편이어서 매달 2만원을 저금하고 있다고 한다. 벌써 20년째라고 하니 할아버지 형편을 생각하면 적지 않게 모였을 듯싶다. 전세자금을 마련해 공기 좋은 외곽으로 이사하는 것이 박 할아버지의 꿈이다. "이 동네에 평생 살 수는 없잖아. 10년 안에는 쪽방을 벗어나야지."

◆'나비작전'에 떠난 종삼 윤락녀 자리…하루 8000원 쪽방들이 채웠다

[그 섬, 파고다]4-① 45년간 한평 쪽방서 사는 70세 할아버지

1968년 9월27일 속칭 '종삼'으로 불리던 종로3가 일대의 골목 어귀마다 100촉짜리 백열등이 달렸다. 이른바 '나비작전'으로 불리는 '종로3가 홍등가 정화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불빛이었다.

손님이 종삼 골목 입구에 들어서면 진을 치고 있던 시·구청 공무원과 사복경찰관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이름이 뭐요?" "직업이 뭐요?" "전화번호가 뭐요?" 등 쏟아지는 물음에 종삼을 찾은 남성들은 줄행랑을 쳤다. 이 같은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가자 종삼을 찾는 남성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나비작전의 전략은 바로 '꽃(윤락녀)에 대한 조치는 효과가 없으니 나비(남성)를 족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종삼 입구에 대낮처럼 등을 켜는 한편 '종삼을 출입하는 자를 적발해 그 명단을 공개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와 함께 '윤락여성은 귀향 조치·직장 알선·부녀 보호소 수용 등의 조치를 취한다' 등의 강도 높은 정화사업에 나섰다.

당초 한 달여를 예상했던 나비작전은 10월5일 새벽 5시 시작된 철거작업을 끝으로 일주일여 만에 막을 내렸다. 마지막 나비작전에는 경찰기동대 234명과 종로구청 철거반 236명, 차량 14대가 동원됐다. 돈의동과 훈정동, 묘동, 봉익동, 인의동 등 일대에 끝까지 남아있던 윤락녀 72명은 서울 대방동에 위치한 서울시립부녀보호소에 수용됐다.

이날을 끝으로 최대 250여호, 1400여명에 달하던 이 일대의 윤락녀는 자취를 감췄다. 종삼에서 밀려난 윤락녀들은 '미아리' 혹은 '천호동' 등으로 흘러들어 새로운 홍등가를 만들었다. 윤락녀들이 떠난 빈자리는 이후 하루 8000원짜리 쪽방을 찾아든 사람들로 채워졌다. 40여년 전 이렇게 형성된 '돈의동 쪽방촌'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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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파고다]20<끝>-③그 섬에 들어갈수록 이 사회의 무관심이 보였다
[그 섬, 파고다]20<끝>-④지면을 필름삼아 펜을 렌즈 삼아 다큐 찍듯 썼죠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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