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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파고다]20<끝>-③그 섬에 들어갈수록 이 사회의 무관심이 보였다

최종수정 2013.11.29 14:48 기사입력 2013.11.2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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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파고다 사람들과 독자 격려에 다시 달려 나갔다

김민영 "그 섬, 파고다'팀의 기자(왼쪽 세번째)가 28일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 일대에서 노인들을 취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sharp2046@

김민영 "그 섬, 파고다'팀의 기자(왼쪽 세번째)가 28일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 일대에서 노인들을 취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sharp2046@


[아시아경제 주상돈 기자, 김보경 기자, 김민영 기자, 백소아 기자]
◆"서른 살 차이 '파친'이 생겼습니다"=주상돈 기자
한참 동안 자판기 커피 예찬(20일자 9면)을 듣고 돌아서는 기자를 박동석 할아버지(75ㆍ서울 상도동)가 불러 세웠습니다. 대뜸 "기자 양반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더군요. 노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묻는 것 같아 선뜻 대답을 못하고 멈칫거리는데 박 할아버지는 "적적해서, 심심해서 공원에 나오는 건데 '거지들처럼 나와 돌아다니고 있다'는 식의 그런 기사만 쓰지마"라며 신신당부를 합니다. 박 할아버지도 파고다공원에 나오는 어르신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신경 쓰이나 봅니다. 본지 설문조사에서 '전혀 존경받지 못한다'를 가장 많이 선택한 연령도 60대 이상이었습니다.(25일자 9면)

파고다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은 자존감도 많이 상실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어르신들은 젊은 기자에게 "젊은 사람이 뭘 안다고 우리들에 대해 쓴데" "할 말 없으니까 그냥 가"라며 등 돌리기 일쑤였습니다. 지금까지 '노인'들에게 쏟아진 비난의 화살을 기자에게 돌려주는 듯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파고다공원을 찾았습니다. 파고다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얼굴을 드밀었더니 이제는 손주 대하듯 먼저 다가와 말을 거십니다. "밥은 먹었어?" "대포 한잔 해야지?" "어딜 그냥 가. 커피 한잔 먹고 가." 서른 살 이상 차이 나는 '파친(파고다 친구)'이 생긴 거죠.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자 한겨울에도 내복을 입지 않는다던 윤 할아버지(8일자 22~23면)가 생각나 전화를 드렸습니다. "누구요?"라며 퉁명스러운 목소리는 "할아버지 따라다니던 기자예요"라는 소리에 금세 부드러워집니다. "할아버지, 내복 오늘도 안 입으셨어요?"라고 물었는데 '내일 온다고?'로 들으셨는지 "내일 공원에서 봐"라고 하시네요. 조만간 꼭 찾아봬야겠습니다. 혹시 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유로 따로 살거나 소원하신가요? 오늘 부모님께 전화 한 통 어떨까요?

◆파고다, 희로애락이 숨쉬는 곳=김보경 기자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는 질문에 아무렇지 않은 듯 "죽을 때만 기다리는 거지, 뭐. 옛날에야 나이 많다고 대접받았지. 지금은 천덕꾸러기 신세밖에 더 돼?"하고 내뱉는 한 할아버지의 말에 마음 한쪽이 아릿해졌습니다. 자조와 푸념 섞인 말들이 그들의 의지에서 비롯된 건 아닐 겁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가정과 사회에서 마땅히 설 곳을 찾지 못하고 외면당한 탓일 겁니다. 그들이 한참을 방황하다 당도한 바로 종로의 파고다공원과 그 주변은 노인들의 허한 마음을 달래주는 도피처이자 안식처였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최근 일입니다. 처음엔 이곳에 독자들에게 들려 줄 만큼 의미 있고 재밌는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싶었죠. 할아버지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탓에 인터뷰를 거절당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르신들과 보폭을 맞추듯 천천히 다가가기로 했습니다. 낮에는 공원 팔각정에 앉아 붙박아 보기도 하고, 저녁에는 식당에서 할아버지들과 막걸리잔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공원을 들를 때마다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고, 어르신들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습니다. 외로운 섬처럼 보였던 파고다 공원이 인간의 희로애락이 살아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는 순간이었죠.
그곳엔 고단한 세상에 지쳐 할 일도, 할 말도 잃어버린 어르신들이 유독 많습니다. 아프다고 소리치지도 않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텅 빈 눈동자만 남았더군요. 그런 어르신들을 바라보며 한동안 머릿속에 맴돈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노인들이 생을 마칠 때까지 내일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삶의 의미와 사는 재미를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까지 명쾌한 답을 찾아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섬, 파고다'를 통해 여러 사람들이 이 고민에 진지하게 동참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겠다 싶습니다.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머지않은 미래의 내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노인 문제를 바라봐 주길 바랄 뿐입니다.

◆그분들 모두 누군가의 부모님=김민영 기자
박카스 아줌마를 취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을 때 자신이 없었습니다. 남에게 털어놓기 남세스러운 일을 하는 할머니들이 새파랗게 어린 기자에게 속내를 털어놓을까 싶은 생각에 걱정이 앞섰던 거죠. 배를 곯아본 기억이 없는 서른 살 여성이 일흔을 넘긴 할머니에게 '왜 이 일로 먹고 사세요'라고 묻는 건 산전수전 다 겪은 그 분에게는 봉창 두드리는 소리로 들렸을 수도 있습니다.

스님 밥을 지어주는 보살이었다가 박카스아줌마 처지로 곤두박질 친 한선화 할머니(70ㆍ가명)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칠순 잔치 때 동생들하고 찍었다'며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며 활짝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때까지 잊고 있었습니다. 싸잡아 박카스 아줌마로 불리는 이분들도 누군가의 어머니, 할머니란 사실을 말입니다. 40년을 전쟁하듯 살아온 할머니의 인생을 고작 원고지 몇 장에 담을 수 있을까요. 자칫 이 보도가 나가면 박카스 아줌마에 대한 비난만 거세지는 건 아닐지. 우여곡절 끝에 기사가 나가고 한 할머니한테 문자를 넣었더니 고맙다네요. 할머니의 고단한 개인사를 재료 삼아 마감을 끝내기 바빴던 내가 그런 소리 들을 자격이 있는지 부끄러워졌습니다.

파고다공원을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30여명의 어르신들을 만났고 45개의 녹음 기록이 남았으며 19꼭지의 기사가 남았습니다. 그 섬에 처음 발을 디딘 지 두 달입니다. 취재를 하는 내내 이 기사가 섬 밖의 사람들과 섬 안의 어르신들을 이어주는 가교가 되길 바랐습니다.

기자 역시 '이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부모에게 잘하냐'란 쓴소리에 6년 전 혼자되신 아버지의 안부를 더 자주 살피게 됐습니다. 이제야 성당모임에 그토록 열성을 보이며 산이다 모임이다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아버지도 사람이 그리웠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섬' 하나쯤 안고 사는 걸까요. 이 기사가 외로운 누군가를 한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렌즈 넘어 '물음표'에 고민하다=백소아 기자
지난달 30일 오후 3시. 파고다(탑골)공원 돌담길을 따라 걸어가던 길에 손과 얼굴이 피투성이인 채 넘어져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을 발견했습니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곁에 다가서자 술 냄새가 훅 끼쳤습니다. 약주를 하신 게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 짧은 순간 내 머릿속에선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찍어야 하는데, 얼굴 나가면 초상권에 걸리려나' '일단 병원으로 모셔 드려야 하는데' 두 마음이 다툽니다. 결국 할아버지 손에 난 상처를 휴지로 닦아드리고 나서 셔터를 부지런히 눌렀습니다. 이것이 파고다와 나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사진으로 파고다의 풍경을, 사연을 전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했습니다. 기획 시리즈가 20회에 걸쳐 한 달 내내 매일 나간다고 들었을 땐 대체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어야 할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사진기자는 만세를 부르지 않는다'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사진기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자 딜레마다." 파고다는 달랐습니다. 찰칵 셔터를 누르기 전에 '아버님' 또는 '어머님'이라고 부르며 서로에게 '꽃'이 되는 과정이 먼저였던 거죠. 찰칵이란 소리에 '어디다가 카메라를 대고 난리야' 등의 험악한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예쁘게 찍어줘'란 할아버지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의 입장이 되어 파고다를 바라보려고 했고 때로는 철저한 타인의 시선으로 파고다를 응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주 동안 파고다를 들락거렸습니다. 기사가 나가기 시작하면서는 다시 그분들을 만나러 또 나가야 했죠. 누군가 내게 '그 섬, 파고다'가 어떤 의미였느냐고 묻는다면 아직 1년차밖에 되지 않은 사진기자에게 사람을 렌즈에 어떻게 담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계기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 나에게, 우리 사회에 커다란 물음표를 선물한 가을이었다고 대답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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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파고다]20<끝>-①"기사 읽는 내내 가슴이 시렸습니다" 다큐의 힘
[그 섬, 파고다]20<끝>-②"탑골·종묘 주변, 세대공감 거리로 확 바꾼다" 서울시 밝혀
[그 섬, 파고다]20<끝>-③그 섬에 들어갈수록 이 사회의 무관심이 보였다
[그 섬, 파고다]20<끝>-④지면을 필름삼아 펜을 렌즈 삼아 다큐 찍듯 썼죠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백소아 기자 sharp204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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