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파고다공원 북문 근처에서 벌어진 장기판에 10여명이 몰렸다. 한 할아버지는 장기판 바로 옆에 쪼그려 앉아 장기를 구경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sharp2046@
[아시아경제 주상돈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불구경 다음으로 재밌다는 게 싸움구경이던가요. 종묘광장공원에 모인 할아버지들 사이에 이것들 못지않게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있습니다. 바로 '장기 구경'입니다. 장기도 전투이니 크게 보면 싸움구경의 범주에 들어가겠군요.
남의 경기를 지켜보는 구경꾼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이들에겐 나름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입에 자물쇠를 채운 듯 입을 꼭 닫고 장기판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할아버지는 '침묵형 구경꾼'.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형입니다. 이런 침묵형 구경꾼 중에는 아예 휴대용 낚시의자를 펴서 자리를 떡하니 잡고 구경하는 할아버지도 있습니다.
사람이 많아지면 말도 많아지는 법. 구경꾼이 세 명 이상 몰린 장기판에는 장기를 두는 사람보다 더 분주한 할아버지들이 있습니다. 바로 '중계형 구경꾼'들인데요. 이들은 눈으로만 보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장기 말의 일거수일투족을 중계하기 바쁩니다. "상(象)이 넘어갔네", "차(車)로 포(包)를 안 먹고 마(馬)를 잡았네", "차(車) 피한다고 졸(卒)이 양쪽에 있는데 들어갔잖어" 등 중계를 듣고 있으면 축구경기 캐스터가 따로 없습니다. 내친김에 판세를 분석하는 할아버지들도 있습니다. "둘이 엇비슷해보여도 포(包)도 있고 상(象)도 있는 홍(紅)이 좋네. 청(靑)이 아까 포를 안 먹은 것이 크다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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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파고다]20<끝>-②"탑골·종묘 주변, 세대공감 거리로 확 바꾼다" 서울시 밝혀
[그 섬, 파고다]20<끝>-③그 섬에 들어갈수록 이 사회의 무관심이 보였다
[그 섬, 파고다]20<끝>-④지면을 필름삼아 펜을 렌즈 삼아 다큐 찍듯 썼죠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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