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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파고다]14-②"찍기는 찍어야 하는데…" 풀기힘든 숙제 '영정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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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동선 부장, 김민영 기자, 주상돈 기자, 김보경 기자] 단정히 머리를 깎고 검은 머리로 물을 들여 10년은 젊어진 것 같은 어르신들은 어디에라도 가시려는 걸까요? 이발 가격이 싸다는 이유 말고 다른 건 없을지 '돌직구'를 날려 봅니다.

"영정사진은 안 찍으세요?" 얘기를 꺼내자 어깨에 하얀색 천을 두르고 이발을 하고 있던 할아버지도, 검은색 염색약을 바르고 앉아 계신 할아버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네요. "그런 걸 벌써부터 찍어서 뭐해" "나 아직 여든도 안 됐어" 등의 호통이 돌아옵니다. 두 할아버지 모두 2~3년 후면 여든인데도 아직 영정사진을 찍을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40년 경력의 이발소 주인이 할아버지들의 말을 거듭니다. 파고다공원 후문 쪽에서 5년이나 이발소를 운영했지만 단 한 번도 영정사진을 찍으러 왔다는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는군요. 이유가 궁금한 찰나, 이발소 주인인 김 할아버지(68·서울 방학동)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뭐가 자랑이라고 영정사진 찍는다고 하겠어. 먼저 말 안 하는데 뭐 좋은 일이라고 '영정사진 찍나 봐요?' 이렇게 물을 수 있나. 맘속으론 그럴 작정으로 머리 깎으러 왔어도 영정사진 찍으러 간다고 말 안하지."

실제로 파고다공원과 종묘공원 인근에 위치한 사진관에는 할아버지 손님이 뜸하답니다. 현재 이 일대에 남아 있는 롯데시네마 피카디리(옛 피카디리극장) 인근에 위치한 W사진관도, 종로3가역 7번 출구 앞에 있는 S사진관도 영정사진을 찍으러 오는 어르신들이 1년에 3명이 될까 말까 한답니다. 사진을 찍으러 와도 '영정사진'이라는 말 자체를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는군요.

"(영정사진) 찍으러 왔다는 소리는 안 하고 '나중에 하나 필요할 것 같아서 그러는데 사진 하나 찍어주소'라고 해. 영정사진이라는 얘기를 하기 싫어하는 거지." S사진관을 운영하는 문재철 할아버지(72·경기도 김포)가 영정사진을 찍으러 오신 어른신들의 마음을 대신 헤아려봅니다.
겉으론 짐짓 관심 없는 척하지만 영정사진은 할아버지들에게 풀기 싫은 숙제인 듯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기자가 영정사진에 대해 묻자 대뜸 "나 찍어줄라고?"라고 반문합니다. 아니라고 하자 실망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찍기는 해야지. 언제 찍어도 찍어야 하니까. 그나마 볼때기가 탱탱할 때 찍어야지. 나이 들어 도깨비처럼 나오면 쓰나. 근데 일부러 찾아가서 찍긴 싫어. 누가 찍어주면 좋고."

날이 풀리는 매년 3월쯤 종묘공원 관리사무소 옆에선 할아버지들의 영정사진을 무료로 찍어주는 행사가 열린답니다. 이때를 기다려 많은 할아버지들이 영정사진을 찍는다는군요. "난 진작 다 해놨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시는 정화진 할아버지(83·서울 사당동)도 7년 전 이곳에서 영정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대포 한잔하고 종묘공원 갔는데 사진 찍어 준다기에 찍었지. 기분? 기분이야 뭐 갈 때 되면 가는 건데 뭔 특별한 것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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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부장 matthew@asiae.co.kr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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