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사진은 안 찍으세요?" 얘기를 꺼내자 어깨에 하얀색 천을 두르고 이발을 하고 있던 할아버지도, 검은색 염색약을 바르고 앉아 계신 할아버지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네요. "그런 걸 벌써부터 찍어서 뭐해" "나 아직 여든도 안 됐어" 등의 호통이 돌아옵니다. 두 할아버지 모두 2~3년 후면 여든인데도 아직 영정사진을 찍을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파고다공원과 종묘공원 인근에 위치한 사진관에는 할아버지 손님이 뜸하답니다. 현재 이 일대에 남아 있는 롯데시네마 피카디리(옛 피카디리극장) 인근에 위치한 W사진관도, 종로3가역 7번 출구 앞에 있는 S사진관도 영정사진을 찍으러 오는 어르신들이 1년에 3명이 될까 말까 한답니다. 사진을 찍으러 와도 '영정사진'이라는 말 자체를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는군요.
"(영정사진) 찍으러 왔다는 소리는 안 하고 '나중에 하나 필요할 것 같아서 그러는데 사진 하나 찍어주소'라고 해. 영정사진이라는 얘기를 하기 싫어하는 거지." S사진관을 운영하는 문재철 할아버지(72·경기도 김포)가 영정사진을 찍으러 오신 어른신들의 마음을 대신 헤아려봅니다.
날이 풀리는 매년 3월쯤 종묘공원 관리사무소 옆에선 할아버지들의 영정사진을 무료로 찍어주는 행사가 열린답니다. 이때를 기다려 많은 할아버지들이 영정사진을 찍는다는군요. "난 진작 다 해놨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시는 정화진 할아버지(83·서울 사당동)도 7년 전 이곳에서 영정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대포 한잔하고 종묘공원 갔는데 사진 찍어 준다기에 찍었지. 기분? 기분이야 뭐 갈 때 되면 가는 건데 뭔 특별한 것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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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 파고다]20<끝>-①"기사 읽는 내내 가슴이 시렸습니다" 다큐의 힘
[그 섬, 파고다]20<끝>-②"탑골·종묘 주변, 세대공감 거리로 확 바꾼다" 서울시 밝혀
[그 섬, 파고다]20<끝>-③그 섬에 들어갈수록 이 사회의 무관심이 보였다
[그 섬, 파고다]20<끝>-④지면을 필름삼아 펜을 렌즈 삼아 다큐 찍듯 썼죠
김동선 부장 matthew@asiae.co.kr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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