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멜로 영화는 한국내 입지가 약한 게 현실이다. 해외와 합작을 통한 '웰메이드' 멜로영화로 해외시장에서 성공사례를 만들어보겠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중 한명인 허진호 감독은 "한국 영화가 1000만 관객 시대를 맞이했다느니, 한류 바람을 타고 있다느니 하는데 일부 대형 블록버스터에나 해당되는 말일 뿐"이라며 쓴소리를 뱉어냈다.
주중 한국문화원 등이 주최한 자신의 특별회고전 참석차 베이징을 찾은 허 감독은 27일 저녁 베이징특파원들과 만나 가진 간담회에서 전반적인 한국 영화계의 어려운 현실과 고충을 토로하는데 주저하지 않으며 이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쏟아냈다.
허 감독은 철학도(연세대 철학과 졸업) 출신이자 대기업에 다니다 30세의 늦깎이 나이에 영화계에 뛰어든 이색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는 마침 자신이 연출한 한ㆍ중 합작영화 '호우시절'의 중국 개봉을 앞두고 있어 중국 팬들의 반응에 대한 기대가 커보였다.
해외유학 시절 사귀었던 한ㆍ중 연인이 우연히 다시 만나는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그린 신작 호우시절은 오는 12월 중국 전역 1200개 상영관에서 동시 개봉된다.
2시간여 지속된 특파원 간담회에서는 신작 호우시절에 대한 얘기가 주를 이뤘지만 대화의 말미에 접어들자 자신의 영화 철학에 대한 얘기, 한국 영화의 현주소 등 가볍지 않은 주제도 다뤄졌다.
사회체제가 다른 중국의 제작 여건에 대해서 순수 멜로영화라서 그런지 큰 제약은 없었다고 했다.
자신은 멜로만을 고집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동안 멜로영화를 찍어서 그런 모양"이라며 "다른 장르의 영화 제작에도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대화가 후반에 접어들자 '소규모 영화의 해외합작'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가 자리잡았다.
요즘 한국 영화업계는 외국과 합작 붐이 일고 있다. 특히 시장 규모가 큰 중화권 팬을 노린 영화들이 늘고 있다. 중국 톱스타와 한국의 한류스타를 앞세워 중화권과 한국ㆍ일본시장을 동시에 노리는 영화가 그것들이다.
"한국은 아직도 저예산의 소규모 영화들이 살아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봐야죠. 90년대 후반부터 영화산업 규모가 커졌다고 하지만 대형 영화에나 해당되는 얘깁니다."
허 감독도 합작이 어려운 현실을 돌파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데 동의했다. 시장 확대와 수익 극대화를 노리는 대형 블록버스터와 달리 소규모 멜로 영화는 생존을 위해 더욱 절실하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급변하는 영화 산업의 환경 변화가 이같은 어려움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했다.
DVD 및 비디오 대여ㆍ판매시장이 부진하고 불법다운로드 시장이 활개를 치는 마당에 극장에서 수익을 내야 하는 현실은 멜로 영화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라도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화 '봄날은 간다'도 일본과 홍콩 자본이 들어간 합작 영화다.
허 감독은 "초기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합작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돌파구라는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라면서도 "하지만 합작을 위한 합작은 성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영화의 내용과 수준, 즉 컨텐츠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물론 제작 과정에서 겪는 언어와 문화 장벽 등 넘어야할 어려움도 적지않다고 했다.
허 감독은 거대한 중국 영화시장에 걸고 있는 기대도 숨기지 않았다.
코믹이나 블록버스터가 아니면 명함을 내밀기 힘든 한국내 흥행기록. 당장 이보다 몇배나 되는 중국 시장은 앞으로도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가 과연 잘 만든 순수 멜로 영화로 중국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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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베이징특파원 don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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