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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모금]20년 전 살해 당한 친구를 애도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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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살해당한 친구를 회고하는 대만계 미국인 후아 쉬의 에세이다. 저자는 이민 2세대로, 버클리대에서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일본계 미국인 학생 켄을 만나 우정을 쌓는다. 하지만 스무살의 켄은 1998년 7월 19일 새벽, 세 명의 강도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곁을 떠난 친구의 기억이 흐릿해짐에 따라 저자는 사진, 음악, 영화, 글쓰기 등을 통해 추억을 소환하며 “일어나지 않은 시간에 대한 가능성”을 상상한다. 친구의 스물한 살 생일파티를 하는 모습, 꿈을 이뤄 로스쿨에 다니는 모습 등을 그리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애도한다. 얼터너티브 록, 너바나의 등장, 흑인 인권 운동 등 1990년대 시대상을 살펴볼 수도 있다. 2023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청년들의 강렬한 우정, 삶을 영원히 변화시키고 마는 무작위적인 폭력을 세심히 들여다보는 우아하고 가슴 아픈 성장 기록'이란 평을 받았다.

[책 한 모금]20년 전 살해 당한 친구를 애도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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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남은 평생 비탄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만 같던, 두고두고 회자될 사랑의 열병을 주기적으로 앓았다. 한동안은 언젠가 자신이 유례없이 슬픈 이야기를 써나가게 되리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 p.13


교육을 중시하는 많은 이민자처럼 우리 부모님도 과학 같은 분야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런 과목은 해석에 내맡겨져 있지 않다는 점 때문이었다. 채점으로 차별하지 못하는 분야니까. 하지만 나는 이런저런 해석에 매달리길 더 좋아하는 체질이었다. - p.17

이민자들이 모이면 곧잘 밀고 당김의 역학을 얘기하게 된다. 고향으로부터 자신을 떠미는 무언가와 저 멀리 어딘가에서 끌어당기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한 곳에서는 기회가 말라붙고 다른 곳에서는 움터,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쪽으로 우리를 이끄는 힘이 있다고. 수백 년 전부터 이런 여정들이 각양각색으로 도처에서 쭉 펼쳐져 왔다. - p.25


그 순간의 경험. 우정의 앞을 내다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서로가 점점 나이를 먹고 헤어지리라는 사실을 알고, 어느 날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는 이유로 서로가 필요해질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우정이 가볍고 일시적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닫는다. - p.69


데리다는 이 번역문에서 얼핏 엿보이는 역설에 이끌렸다. 친구와 적, 공적 생활과 사적 생활, 산 자와 ‘유령’ 사이에 내재된 긴장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유대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 p.83

발의안 209호의 통과가 확실시되기가 무섭게 거리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그날 저녁, 나는 캠퍼스 시계탑으로 갔다. 이미 일부 학생 시위자들이 시계탑 꼭대기의 난간에 사슬로 몸을 묶은 채 법안이 파기되기 전까지 내려가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었다. - p.112


이 수업은 진지한 열의로 가득했고 전국에서 몰려든 기자들은 대학에서 랩 음악이 수업 주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얼빠진 듯 바라봤다. - p.116


그러자 내 멘티 한 명이 권총을 휙 내보였고 (나는 그 애가 그런 걸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러자 상대편 차가 다른 차선으로 피했다. 그 애가 손가락질을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저 중국 놈들.” 그 애들의 분류에서 나는 어느 쪽에 드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볼 만큼 궁금하진 않았다. - p.137


이야길 아무리 많이 해도 네가 그립다는 사실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아서 이제는 그 감정을 여러 시대로 구분할 수 있게 됐어. 1998년 10월경에 너를 그리워했던 때가 그리워. 뒤를 조심하며 다니지 않던 때가 그립고, 밤에 저녁 먹으러 나가던 때가 그립고, 너희 집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던 때가 그리워. - p.278


진실에 다가가기 | 후아 쉬 지음 | 정미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84쪽 | 1만68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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