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가 말한 식자우환(識字憂患), 백 번 맞는 말이다. 사리 분별과 사회정의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면 인간은 편히 쉴 수도, 번뇌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제 아무리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편이 낫다(존 스튜어트 밀)’고 설득한들 지식인의 태생적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난세다. 남북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고, 중국과 미국의 틈새에 끼어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한 때 정보기술(IT)산업을 기반으로 나라가 잘 나가다 싶더니 어느새 저성장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일부 젊은이들은 자기 조국을 저주하는 ‘헬조선’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쓴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세대와는 달리 이들은 자기 삶이 과거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다. 그저 60세 정년까지 잘리지 않고 몸을 보존할 수 없는 일자리가 있으면 앞다투어 달려간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젊은이들은 결혼을 미루고 결혼해도 출산을 주저한다.
이런 난세니 새로운 지식이 등장, 백가쟁명의 시대가 되어야 하지만 정작 대학과 지식인은 조용하다. 지식의 산실인 대학, 1980년대 사회 변혁에 대한 온갖 이론이 쏟아져 나온 한국의 대학에는 지금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왜냐하면 한국의 학계는 독자적인 한국적 지식을 생산하는 생태계가 붕괴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붕괴는 인문, 사회과학에서 현저하다.
이런 붕괴의 가장 큰 이유는 교수의 업적평가 제도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상위 대학은 사회에 영향을 미친 저작물, 특히 장기 연구의 결과물인 저서의 유무를 중요하게 판단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은 교수의 연구업적평가에서 저서를 제외한다. 그리고 별 의미 없는 논문의 생산량만을 가지고 평가한다. 아무리 연구해도 업적으로 인정되지 못하고, 아니 업적 미달로 징계 받는 상황이니 누가 지식의 생산 공장을 가동하려 하겠는가. 더구나 1년이라는 단기 평가로 재단하는 데 누가 장기 연구를 하려 하겠는가.
일본의 서점에 가보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분석한 저서가 책장에 가득하다. 그러나 한국의 서점에는 국제통화기금(IMF)위기에 대한 저서들이 별로 없다. 이런 지식의 부재 속에 우리는 외국의 교수를 비싼 돈 주고 모셔다 그들의 책 보면 다 나오는 내용을 열심히 듣는다.
조선 후기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실학파가 등장해 다양한 대안을 쏟아냈다. 다시 제2의 실학파 등장을 위해 어떻게 망가진 지식 생태계를 복원해야 할 지 고민할 시점 아닌가.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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