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후루룩거리며 텔레비전 채널을 돌린다. 여기저기서 먹고 있다. 온통 먹자판이다. 왕년의 수사반장 최불암씨는 범인 잡던 솜씨를 발휘해 전국에 흩어진 한국인의 밥상을 찾아내 숨은 맛을 들추고 있다. 여섯 시 내 고향의 어르신들도, 외딴 섬이나 깊은 산중에 홀로 사는 기인(奇人)도 리포터와 나란히 앉아 뭔가 먹는다.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인 며느리의 친정에 간 시어머니와 사위도 먹는다. 군대체험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부대 내 매점(PX) 같다. 지난겨울 만재도에서 유해진씨와 함께 지내며 요리 솜씨를 뽐낸 차승원씨는 다음 달에 다시 그 섬에 간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왜 이렇게 먹어대는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 메아리 없는 외침, 이해할 수 없는 죽음과 슬픔, 가난에 대한 천대, 고통에 대한 조롱, 오늘에 대한 체념과 내일에 대한 공포, 울분과 응어리…. 어떤 우울증은 폭식을 유발해서 약을 먹어야 낫는다. 내 주변에도 "스트레스가 심해 왕창 먹는다"는 동료가 있다. 그런 건가. 견딜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때 토끼는 제 새끼를 삼킨다. 하면, 먹어댐은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파토스인가. 하지만 걱정스럽다. 다 먹어치우고, 슬픔도 분노도 응어리도 희망도 다 먹어치우고 우리 주변과 자신마저 다 먹어치우고 창백한 이빨만 남아 저 허황한 거리에 뒹굴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음식이란, 그리고 무엇을 먹는 행위는 보다 절실하고 간절한 비나리가 아닌가. 불가의 수행자들은 공양을 하기 전에 기도한다. "이 공양은 어디에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 부끄럽네. 이 몸을 살리는 약으로 알고 도업을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고자 감사한 마음으로 이 공양 듭니다." 또한 우리에게 식탁은 어떤 부름, 그러한 공간이 아닌가. 식탁의 부름이란 저물녘 골목에 흩어져 놀던 우리를 부르는 소리, '진석아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라'던 어린 날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간절하지 않은가. 신(神) 또한 마지막 날에 우리를 그렇게 부를 것이다. "그만 놀고 돌아오너라!"
허진석 문화스포츠레저부장 huhball@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