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기사를 접할 때마다 데자뷔를 느낀다. 1979년엔 정치적 12ㆍ12사태가 있었지만, 그로부터 10년 후인 1989년엔 증권시장의 12ㆍ12사태가 발생했다. 코스피가 1004에서 정점을 찍고 860선대로 하락하자 정책당국자는 발권력을 동원한 증시부양책을 발표했다. 실제로 3개 투신사들을 동원해 2조7000억원의 주식을 무차별적으로 매입했지만 시장은 470선까지 빠지며 붕괴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3투신사도 동반 부실화됐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 화를 자초한 전형적 실패 사례이며, 시장에 대한 정책 당국자의 과도한 자신감이 빚어낸 일종의 참사였다.
우선 삼성전자를 보자. 삼성전자는 지난 5월10일 이후 다섯 달이 넘도록 그룹 총수의 유고 상태에 빠져 있다. 이렇게 거버넌스의 최고 정점이 부재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상세하고도 투명한 정보공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의혹만 증폭되고 있다. 전혀 글로벌 기업답지 않다. 어찌 보면 북한 스타일과도 닮은 꼴이다. 최고권력자인 김정은이 40일째 공식석상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 자세한 내용들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것과 유사하다. 당연히 삼성전자를 보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불확실성과 의구심, 그로 인한 고민은 깊어만 간다. 온갖 루머와 억측들이 재생산되며 확산되고 있다. 아무리 삼성의 시스템이 잘돼 있다 하더라도 리더십이 실종된 상태에서 제대로 돌아갈 순 없는 노릇이다.
현대 주식시장에서 인위적 주가부양은 안 된다. 후진적 제도와 정책을 개선하는 선에 그쳐야지 그 이상을 가면 결국 엄청난 부작용만 남긴다. 대신 주식시장을 진정으로 건강하게 부양하려면 앞서 얘기한 기업들 사례에서 반면교사를 얻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잭 웰치에서 제프리 이멜트로 승계되는 과정에서 8년간의 철저하고 투명한 검증 과정을 거쳤다. 글로벌 지배구조 스탠더드에서는 이사회의 독립적 견제와 균형을 최우선 덕목으로 강조한다. 따라서 한국의 대표 기업들인 삼성전자, 현대차, KB금융 등이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하려면 지배구조의 개혁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럴 때 글로벌 장기투자자들도 한국 기업과 주식시장에 관심을 갖고 투자를 확대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주가부양책이 아닐까.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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