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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고시준비에 청춘을 바쳐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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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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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채용시험 SSAT가 있던 날, 온 나라가 들썩였다. 북미지역에서도 유학생들이 뉴욕, LA, 토론토 등지에서 글로벌 SSAT를 보았으니 사실 들썩인 것은 한국만은 아니었다. '열린 채용'이라 하여 지방대, 여성인력, 소외계층에 대해 폭넓게 문을 열겠다는 취지에서 채용시험 자격기준을 완화한 데 따라 응시인원도 크게 늘었다. 5500명을 채용하는데 10만명이 지원하여 18대 1이라는 사상 최고 경쟁률 기록을 세웠다.

삼성그룹 입사시험은 몇 년 전부터 '삼성고시' 또는 '삼성수능'이라 불렸다. 교보문고 조사 결과 SSAT 관련 문제집은 시중에 총 63종이 나와 있다. 권당 판매가격도 2만원이 넘는다. 대학가에는 SSAT 대비 '족집게 수업'이 최고 25만원에 개설되었다. 수험생들이 평균 두 권의 수험서를 사고 일부가 학원 강의까지 듣는다는 언론 보도를 감안하면 수험 대비 비용만 100억원이 넘는다.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삼성그룹은 채용방식을 개선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고시는 삼성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1200명을 채용하는 현대자동차에도 10만명의 지원자가 몰렸고, 서류전형을 통과한 1만명이 인적성검사인 HMAT를 치렀다. 300명을 채용하는 KT의 올해 하반기 공채에는 4만5000명이 몰려 15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30대 대기업그룹에 입사하는 것은 거의 '고시'에 가깝다.

입사고시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고시가 확대 재생산되고, 수많은 청춘들이 '고시준비생'의 길에 접어들고 있다. 일단 대학입시가 고시준비생의 첫 관문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소위 명문대학이라고 인정받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나아가 국내 최고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부모와 입시생은 많은 자원을 투입한다.

이 과정에서 더 나은 대학에 가기 위해 반수(대학 입학 후 2학기에 휴학하고 입시에 재도전하는 것), 재수, 삼수를 택하는 것도 다반사다. 대학을 졸업하면 입사고시를 치러야 한다. 대기업에 입사하려면 수십대 일, 또는 수백대 일의 관문을 뚫어야 한다. 마음에 드는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반수(기업에 입사한 후에도 계속 채용시험에 지원하는 것), 재수(졸업을 연기하고 취업준비) 등을 택한다.
요즘 한창 입학원서를 받고 있는 법학전문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도 '고시' 못지않은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이들 대학원에 입학하려는 지원자들은 대학 졸업 예정자도 있지만 기업에 입사한 직장인들도 적지 않다.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에 근무하지만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야 미래가 밝다'는 소신을 가지고 법학전문대학원에 지원한다. 법학전문대학원 또한 고시 못지않은 경쟁률과 난이도를 보인다. 오히려 높은 학비, 관련 시험 준비 등 비용을 감안하면 '사법시험'보다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고비용 시험'이다.

고시준비생이 늘어날수록 문제는 심각해진다. 첫째,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각종 '유사 고시'에 너무 많은 지원자가 몰려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생산적인 일에 투입되어야 할 인적 자원이 '예비인력'으로 머물게 되어 사회의 동력을 떨어뜨린다. 둘째, 젊은 세대의 경제적 독립이 늦어지면서 부모세대의 부담이 커지고, 이는 노후대책의 부실화로 이어진다. 셋째, 고시준비생들의 삶의 질과 행복감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젊은 세대의 불안감, 좌절, 상대적 박탈감 등은 결혼을 늦추는 큰 원인이기도 하다.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삶에 대한 기준이 저마다 좀 달랐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데 왜 행복의 기준은 그렇게 획일화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청춘들은 고시준비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당장 뛰어내려야 한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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