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무거움. 부처를 경배하러 온 사람들은 돌이나 청동을 경배하러 온 건 아니다. 깨달음으로 나아간 사람의 어떤 상징과 의미와 기운을 만나러 온 것이다. 불상 앞에 있노라면 대개 고요를 느낀다. 돌이나 청동이 스스로 소란을 만들어 내는 법이 없으니 고요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보다도 미묘한 표정에서 우러나는 고요, 안정감 있는 자세와 편안한 몸짓이 주는 고요, 그리고 돌과 청동의 묵중함이 자아내는 고요가 공간 전부를 고요하게 한다. 시앗싸움에 돌부처가 돌아앉는다는 말이 있지만, 그만큼 처첩의 갈등은 보기 흉하다는 걸 강조하는 말이다. 결코 돌아앉을 수 없는 대상 1호로 돌부처를 꼽았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돌부처는 돌이기도 하지만, 결코 돌아앉지 않을 거라는 신뢰를 지닌 무게감으로 앉은 부처이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스승을 의미하는 말인, 구루(guru)는 '무겁다'는 의미를 지닌 산스크리트어다. 스승은 왜 무거운가. 그는 오랜 수련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중심돌을 쌓아 왔기 때문이다. 탐욕과 분노는 그 무게중심에 생긴 문제이다. 세상의 변화, 혹은 환경과 인심의 변화에 따라 본질이 흔들리는 것은, 중심이 저 무거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깨달음은 하나다. 삶은 짧고 괴롭다. 그것을 가장 길고 행복하게 쓰는 방법은 너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베푸는 일이다. 너 자신에게 쓰면 너는 가벼워진다. 너의 몸과 마음이 너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너를 쓰면 너는 무거워진다. 많은 사람들이 변함없는 너를 쓸 수 있으려면 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꿀벌은 꽃 속의 꿀을 한 번에 한 방울씩 꺼내 온다. 그런 다음 봉방(蜂房)에 그 화밀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는 벌집 위에 떠서 날개로 부채질을 한다. 이런 건조작업으로 화밀은 90% 이상의 수분이 증발하고 밀정(蜜精)이 남게 된다. 이 일이 끝나면 벌은 다시 화밀 한 방울을 꽃에서 봉방으로 운반한다. 다시 날개로 부채질을 한다. 묵직한 벌통은, 꿀벌들이 수백만 번을 날아서 따온 꿀들의 무게이다.
<향상(香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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