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빨리 알약 몇 개 입안에 털어 넣으면 일주일쯤 끼니 걱정 없이 버틸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도래했으면 하는 공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먹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자칫 굶어 죽을 수 있으니까) '뭘 먹을까 하는 고민'은 (생존에) 꼭 필요한 게 아니란 걸 알게 된 것이다.(스스로 얼마나 대견하던지!)
그 이후 내 일상은 크게 개선됐다. 하루 세 끼는 예전처럼 그대로 유지하되 선택을 남에게 떠넘겨 그 지긋지긋하고 허망한 고민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문제는 메뉴가 다양한 식당에 갔을 때 발생하는데 이때도 끝까지 고민을 남에게 밀어 버린다. "뭐 하실래요?"하고 물으면 "글쎄요, 이 식당은 뭘 잘하나, 그걸로 하지요" 또는 "드시고 싶은 걸로 주문하세요, 저는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하고 슬쩍 뒤로 빠지는 것이다.
혹 눈치 없이 끝까지 뭘 먹을 거냐고 추궁하는 이들이 종종 있는데 그때를 대비한 비장의 카드가 있으니, 심드렁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무거나 먹지요, 뭐."
글=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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