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살아남은 소녀 무용수의 회고
"우리가 탄 기차 차량은 내가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종류다. 이것은 여객 차량이 아니다. 가축이나 화물을 수송하기 위한 차량이다. 우리는 인간화물이다. 한 개의 차량에 100여명이 타고 있다. 한 시간이 일주일처럼 느껴진다. 8명의 사람에게 빵 한 덩어리가 주어진다. 그리고 물이 담긴 양동이 하나. 배설물을 위한 양동이 하나. 땀 냄새와 배설물 냄새가 사방에 진동한다. 사람들은 이송 도중 죽는다. 우리는 모두 똑바로 선 채
2026.05.15 10:00
얼룩말은 좋겠다, 스트레스가 없어서
불안이나 스트레스를 다루는 책은 넘쳐난다. 이 주제만큼 꾸준히 쏟아져 나오는 분야도 드물다. 제목은 조금씩 다르지만 몇 권만 훑어봐도 기시감이 드는 이유는, 결국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울 것이 없다는 예감, 그럼에도 다시 집어 들게 되는 묘한 반복. 어쩌면 우리는 답을 찾기보다 같은 질문을 다른 목소리로 확인받고 싶은 쪽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최근 통계청 조사
2026.04.03 11:12
인간의 온기마저 로봇에게 맡길 순 없잖아
지난달 인천에서 생후 20개월 된 여자아이가 갈비뼈가 드러날 만큼 마른 몸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엄마는 아이를 굶기고 학대했다. 아이의 손가락에는 배고픔을 버티지 못하고 빨아댔던 상처가 남아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MBC 고발 프로그램 '실화탐사대'에는 또 다른 비극을 마주한 아빠가 나왔다. 그는 자폐 1급인 스물일곱 살 아들을 20년 넘게 혼자 키우다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 돌봄 시설에 전화를 돌렸지만 성인 자폐 1급
2026.03.27 10:30
'천조국' 군대 바꾼 비밀전략조직
연간 국방비 약 1400조원,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의 고민은 역설적으로 "정말 우리가 최강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중국은 군민(軍民)융합 전략으로 민간의 첨단 기술을 군사 영역에 적극 끌어들였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드론 활용법을 빠르게 학습했다. 미국 내부에서는 북한조차 핵탄두를 탑재한 KN-08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압도할 수 있다는 공포가 퍼졌다. 그럼에
2026.03.13 10:40
조화를 찾는 풍수지리, 인문학·과학과 만나다
풍수지리는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는 토속 신앙 중 하나다. 집을 고를 때 창문이 남쪽으로 뚫렸는지, 머리를 어느 방향에 두고 자야 하는지, 어느 장소에 거울을 둬야 하는지 고려하는 것들 모두 풍수지리와 관련돼 있다. 집안 어른이 돌아가셨을 때도 풍수지리에 기댄다. 묘지를 조성할 곳을 찾을 때 풍수지리 전문가를 찾아서 조언을 듣는다. 마음 한구석에 풍수지리에 대한 불신이 있더라도, 굳이 말을 따르지 않아 화가 올 바에
2026.03.06 13:31
"AI가 몸을 갖는 순간, 세상이 바뀐다"
"컴퓨터는 인간에게 어려운 일은 잘하지만, 인간에게 쉽고 하찮은 일은 오히려 어려워한다."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의 말이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비몽사몽한 상태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를 닦고 옷을 입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컴퓨터는 이런 행동을 수많은 문장과 데이터로 쪼개 이해해야 했다. 현실 세계의 무한한 변수를 '규칙'으로 정리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대중 앞에 공개된 로봇의 움
2026.02.27 11:01
돈으로 환산되는 현대사회의 관계
눈을 질끈 감았다. 소설 밖에서 주인공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소설 속 주인공이 내가 숨겨두었던 내면을 들춰냈다. 발가벗겨진 듯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모임에서 친구가 입고 온 명품 옷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면서도, 속으로는 내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게 될 때가 있다. 처음 만난 타인의 외모만으로 은근히 '견적'을 매기면서도, 겉으로는 순진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소설 '안녕이라 그랬어
2026.02.20 09:33
경제를 발전시키는 전쟁은, 이제 없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중앙은행은 영국중앙은행(BOE)이다. 영국이 '태양왕' 루이 14세의 프랑스와 전쟁 중이던 1694년 설립됐다. 당시 영국 국왕 윌리엄 3세는 막대한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금융인들로부터 거액을 차입했고, 그 대가로 BOE 설립과 은행 특권을 허가했다. BOE를 중심으로 국가 신용 체계가 구축되면서 영국은 전쟁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었고, 프랑스의 팽창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눈에 보이지 않
2026.02.13 13:17
프롬프트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의 품격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이제 묻지 않아도 답을 내놓는다. 긴 보고서를 던지면 요약이 돌아오고, 생각이 채 정리되지 않아도 그럴듯한 문장이 완성된다. 일은 빨라졌다. 대신 읽는 시간은 줄었고, 생각이 길게 이어지는 순간은 점점 드물어졌다. 무엇을 이해했고 어디까지 판단했는지는 모호해진 채, 결과만 남는다. 'AI 증강 독해와 AI 드리블링 바이블'은 이 익숙한 풍경 앞에서 잠시 멈춰 서게 하는 책이다. AI를 더 잘 쓰는 방법
2026.02.06 11:00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세 살 이전의 기억이란 가능할까.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처음 먹은 초콜릿은 어떤 맛이었는지. 지난해 칸 영화제 초청작 '리틀 아멜리'의 원작이자 아멜리 노통브의 자전적 소설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의 주인공 '아멜리'는 이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 아무것도 없었던 태초의 감각부터 호수에서 수영을 배우던 푸르름, 몰래 맛본 자두술, 초콜릿을 처음 맛보고 환호하던 순간까지 또렷하게. 소설은
2026.01.23 1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