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최초 제29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올해 선댄스 월드시네마 심사위원 대상은 매우 특별한 작품에게 돌아갔다. 영화의 시적인 이미지는 서사의 깊이와 함께 정서적인 충격을 안겨주며 우리를 강렬하게 매혹시켰다. 감독은 특정 인물들의 역사적 일화를 다루는 것을 초월해 불멸의 세계를 담아내는 성취를 이뤘다."
지난 27일(현지시간 26일) 미국 유타주 파크시티에서 열린 제29회 선댄스영화제의 마지막 날, 아누락 카쉬아프 감독이 상기된 표정으로 시상대에 섰다. 각본상, 감독상에 이어 마지막 순서인 심사위원 대상을 발표하기 위해서다. 곧 이어 그의 입에서는 오멸 감독의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이하 '지슬')'가 호명됐다. 한국 영화 최초로 세계 최고의 독립영화제 '선댄스영화제'의 대상을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선댄스를 사로잡은 '지슬'은 23일 개막한 제42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스펙트럼 부문 상영을 앞두고 있다. 2월에 있을 제19회 브졸아시아국제영화제 장편영화 경쟁부문에도 진출해 또 한 번의 수상을 노린다. 이미 지난해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넷팩상, 시민평론가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CGV 무비꼴라쥬상 등 4개 부문의 상을 휩쓸어 화제가 됐다.
이쯤되면 '지슬'이 도대체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진다. 영화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인 제주 4.3을 유머와 위로를 곁들인 방식으로 들춰낸다. 때는 1948년 11월, 제주섬에 미군정의 소개령이 내려온다.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을 폭도로 간주하고 무조건 사살하라." 이 끔찍한 지시에 대해 "형님 나 총 없어도 돼. 나 완전 빨라 총도 나 못맞출걸"이라며 무작정 내달릴 정도로 순박한 것이 당시 제주도 사람들의 모습이다.
영화는 신위-신묘-음복-소지라는 소제목이 붙은 4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모셔 앉힌다는 '신위', 영혼을 모시는 장소를 뜻하는 '신묘', 제사 음식을 나눠 먹는 '음복', 제사에 사용한 지방지를 태우는 행위인 '소지' 등 제사의 의식에 맞춰 영화는 영문도 모른 채 죽어나간 제주 4.3 희생자들의 원혼을 위무한다. 오멸 감독이 "수상의 기쁨을 영혼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한 발언도 여기서 나온 말이다.
흑백의 화면에 커다란 흰 글씨로 자막이 올라가는 게 마치 옛날 영화 한 편을 보는 느낌을 준다. 제주 출신 배우들과 제주 방언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자막은 필수다. 부산영화제 상영 당시, 관객들이 초반에는 낯설어 하다가 중간에는 웃다 울다가 끝내는 먹먹해진 가슴으로 돌아가게 했던 작품이 바로 '지슬'이다.
우리가 잘 몰랐던 '제주'의 아픔을 다시 끄집어낸 오멸 감독은 제주 토박이다. 데뷔작 '어이그 저 귓것'(2009)에서부터 '뽕똘'(2009), '이어도'(2011) 등 줄기차게 제주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뽕똘'은 키가 작지만 야무지게 생긴 사람을 말하는 제주도 사투리다. '어이그, 저 귓것' 역시 제주도 사투리인데 '아이구, 저 귀신이 데려갈 바보 같은 놈'이란 뜻이다.)
가장 최근작 '이어도' 역시 물질을 하며 혼자서 아기를 키우는 어린 엄마를 그린 작품으로, 제주도의 바람과 돌, 여자를 잔잔한 흑백 화면에 담아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도 오 감독은 제주 4.3 사건을 은유적으로 담아냈다.
'지슬'은 개봉 역시 사상 처음으로 제주도에서 가장 먼저 한다. 이름 없이 떠난 이들에게 제사를 지내듯 가장 먼저 이 영화를 올리고 싶은 마음에서다. 제주에 서는 3월1일, 나머지 지역에서는 3월21일 관객과 만난다.
조민서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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