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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젊은 마르크스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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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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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34년 봄, 제갈공명이 출사표를 내고 위나라 정벌에 나선다. 공명의 다섯 번째 북벌. 위의 대장군 사마중달이 나와 막는다. 공명은 속전속결을 원하나 중달은 40만 대군을 거느리고도 회전(會戰)을 피한다. 전선은 지지부진, 사자만 하릴없이 오간다. 하루는 중달이 촉의 사자에게 묻는다. "공명은 어찌 지내는고?" 사자가 대답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도록 일하십니다. 곤장 스무 대를 칠 죄인도 친히 다스리며 식사는 하루에 서너 홉만 하십니다." 중달은 생각한다. "일은 많고 먹는 것은 적으니 어찌 오래 가겠는가." 과연 공명은 그해 8월 오장원(우장위안ㆍ五丈原)에서 숨을 거둔다.

 린위탕(林語堂)은 <생활의 발견>에 이렇게 썼다. "중국 사람은 그 현묘한 창자로 생각한다. 중국의 학자들은 '만복의 사상' '만복의 학식' '만강의 애상' '만강의 분노' '만강의 회한' '만강의 분만' 혹은 '만강의 사모'를 품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있다. (중략) 중국인에게는 과학적 증명이 소용없다. 중국인은 그저 배로써 느끼는 것이다. (중략) 중국의 학자가 논문이나 연설을 위하여 자기 사상을 정리하여 그것을 아직 지상에 발표하기 전에는 '복안이 되어 있다'는 말을 쓴다. 그 사상은 즉 뱃속에 정리했다는 말이다."
 린위탕은 중국 푸젠성(福建省)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상하이 성요한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했다.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독일 예나대학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해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경대학 교수로 초빙되어 문학비평과 음운학을 가르치면서 왕성한 집필활동을 시작했다. 1930년대부터 중국어 외에도 영어로 글을 쓰고 발표했다. 영어로는 중국문화를 옹호하고 중국어로는 모국의 속물성(俗物性)을 풍자했다. 1968년, 1970년 서울을 다녀가기도 했다.(해외저자사전, 교보문고)

 우리는 선비의 식탐을 곱게 보지 않는다. 음식을 탐하는 태도 자체를 점잖지 못하다고 본다. 위가 비어야 머리에 글자가 들어온다는 속설도 있다. 칼 마르크스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마르크스는 청년 시절에 시를 쓰기도 했는데, 오래전에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나왔다. 시집의 제목은 <젊은 마르크스의 시>다. 시집을 낸 출판사는 '풍경'이다. 소설가 정찬주 선생이 고향인 화순으로 귀향하기 전에 운영하던 곳이다. 정 선생이 하루는 "좋은 원고를 구했다. 청년 마르크스가 쓴 시야. 자네도 한번 읽어봐"라고 권해 책이 나오기 전에 읽어 보았다.

 정찬주 선생은 "그 중에 이런 것도 있어"라며 외워 둔 시를 읊어준 다음 '낄낄' 웃었다. 정 선생이 이렇게 웃은 경우는 딱 두 번이다. 한번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번역한 책을 읽은 다음이다. '야생오리의 야성적인 울음소리'라는 대목을 읽고 그렇게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였으리라. S출판사에서 제목을 바꿔 낸 이 책은 역대 <월든> 번역 가운데 최악으로 분류된다. 마르크스의 시를 읽은 다음에 웃은 웃음은 야생오리 때와는 달랐다. 선생의 말을 듣자마자 나도 웃고 말았다. 결코 가벼운 '낄낄'은 아니었다.

 저녁식사를 너무 많이 하는 자는
 밤중에 꿈으로 신음하게 된다.
 -의학생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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