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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닥동집과 닭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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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동집 대신 마느리요?" 주문을 받는 발음이 하 수상타 싶더라. 술은 내가 먹었는데 왜 종업원의 혀가 꼬였냐, 갸웃거리며 다시 주문했다. "꼬치 하나를 추가하는데 닭똥집은 빼고 마늘을 넣어주세요." 그제야 네 네, 하고 돌아서는데 옆에 있던 주인이 거든다. 우리나라에 와서 공부하는 중국 학생인데 아르바이트를 하는 거라고. 어쩐지, 앳돼 보이더라니. 며칠 뒤 회사 근처의 저 '오뎅바'를 다시 들러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이번에도 그는 "닥동집 대신 마느리요?"라고 주문을 받는데 이미 내 귀는 '닥동집'을 '닭똥집'으로, '마느리요'를 '마늘이요'로 자동 번역을 해버리는 거다. 어린 학생이 타지에서 학비를 벌겠다고 고생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애틋해서 자발적인 청각의 기적을 행하고 만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뎅바 근처 24시간 라면집도 외국인 근로자의 손발에 의존하고 있다. 연변 조선족으로 짐작되는 아주머니들이 김밥을 말고 라면을 끓이고 식탁을 닦느라 밤낮으로 눈썹을 휘날린다. 어쩌다 새벽 출근길 해장이나 하겠다며 라면 한 그릇을 주문하면, 중국 무협 영화에 나올 법한 풍모의 아주머니가 무림의 고수다운 손놀림으로 솜씨 좋게 한 그릇을 뚝딱 내온다. 그리고는 아까 꾸벅꾸벅 졸던 그 자리로 돌아가 중국 말인지, 연변 말인지로 수다를 떠는데 중간중간 섞인 한국말이 오히려 이채롭더라. 그렇게 국적 불명의 대화를 들으며 라면 한 그릇을 비우다 보면 한국에서 중국식 라면을 먹는지, 중국에서 한국식 라면을 먹는지 헛갈린다.
일자리가 없어서 아우성이지만 일할 사람이 없어서도 난리다. 그 빈자리를 중국, 필리핀, 네팔 출신 인력들이 채운다. 이제는 공사장이고 시골이고 저들이 없으면 건물을 세우기 어렵고 수확도 버겁다. 그러다 보니 주객전도의 텃세도 발생하는데,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어느 가난한 시인(詩人)의 사연은 개그콘서트 저리 가라다. 일당이나 벌겠다며 허접한 몸뚱이를 이끌고 부추 밭에 갔는데, 부추를 베고 묶고 상자에 포장하고 심지어 새참까지 실어 나르는데 한국말도 잘 못하는 네팔 출신 청년한테 "이런 쥔장할, 똑바루 일 안 혀?" 이런 욕도 먹고, 연변 출신 아주머니한테 아오지 탄광급의 살벌한 눈총을 맞았다나 어쨌다나.

국내 거주 외국인 근로자 100만명 시대. 가뜩이나 부족한 일자리를 외국인에게 뺏긴다는 지적도 있지만 우리 사회를 쓸고 닦고 조이는 저들이 아니면 누가 허드렛일을 껴안겠는가. 대한민국도 이제 '노동의 만국기'가 펄럭인다. 그러니 닥동집도 중국식 라면도, 네팔 청년의 잔소리도 무심히 받아들일 뿐이다.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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