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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김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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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응 건설부동산부 차장

박철응 건설부동산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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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나른한 오후의 교정에서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친구 김현식이 유령처럼 다가와 가수 김현식의 부음을 전했다. 동명이인이었던 친구는 흥분해 있었고 나는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그야말로 느닷없는 얘기에 놀라고, 평소 실없는 농담을 일삼던 친구에 대한 불신이 불러오는 다그침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철이 없어도 농지거리의 소재는 아니었다. 그의 죽음은 비현실적이었고, 한겨울 갑자기 바깥에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선뜩했다.
일어설 수 없는 높이의 좁은 다락방에서 '더블테크' 카세트는 또 하나의 세계였다. 아직은 낭만이 흘렀고 라디오는 주연인 시절이었다. 시커먼 까까머리들이 모여서 전날 들었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나온 얘기를 하며 낄낄대거나, 여자 DJ에 대한 애틋함을 나누기도 했다. 가슴에 꽂히는 음악이 있으면,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들었다. 이문세를 거쳐 유재하, 그리고 김현식을 들으면서 왠지 이렇게 어른이 돼 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라도 내리면 여물지 않은 성대로 '비처럼 음악처럼'을 불러댔다.

초창기 그의 목소리는 소년의 흔적이 느껴지는 청아한 목소리였다. 목소리만큼이나 멜로디는 달보드레했고 꾸밈없이 절실한 '돌직구' 가사에는 진정성이 넘쳐났다. '기다리겠소 영원히 이 생명 끝날 때까지/ 사랑하겠소 영원히 저 태양 식을 때까지(기다리겠소).'

하지만 '이 마음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해도 결국 '사랑은 기쁨보다 아픔인 것(사랑했어요)'을 절절히 각인시켰다. 하모니카 연주곡 '한국사람'은 닿을 수 없는 슬픔의 정수였다. '사랑의 가객'이란 수식어는 괜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는 오직 사랑으로 타올랐다. 어느 날 만난 김민기가 '민족'을 얘기하자, 김현식은 '사랑'으로 맞섰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김현식을 헤아리는 주된 단어는 외로움이었다. 방송에 나가지 않으면서도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지만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사랑에는 실패했다. 믿고 따랐던 누나의 이민도 충격이었다.

하지만 순수한 사랑과 근원적 외로움은 김현식 음악의 근간을 이뤘다. 순수한 만큼, 또 외로운 만큼 그는 음악에 몰두했다. 건강이 악화돼 입원한 병원에서도 한 소녀를 위해 노래를 불렀다. 그 소녀가 녹음했던 노래들이 'The sickbed live'란 제목의 음반으로 나오기도 했다. 병원을 몰래 탈출해 무대에 서야 했을 정도로 김현식에게 음악은 절실한 것이었다. 사후 최고의 인기를 모은 '내 사랑 내 곁에'의 거칠고 갈라진 목소리는 김현식이 마지막까지 얼마나 음악만을 붙들고 있었는지를 짐작게 한다.

그가 떠난 11월은 김현식을 닮았다. 위대한 가수의 음악과 삶을 반추해보며 쓸쓸함과 순수함에 대한 상념에 잠긴다.





박철응 건설부동산부 차장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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