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무리 철이 없어도 농지거리의 소재는 아니었다. 그의 죽음은 비현실적이었고, 한겨울 갑자기 바깥에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선뜩했다.
초창기 그의 목소리는 소년의 흔적이 느껴지는 청아한 목소리였다. 목소리만큼이나 멜로디는 달보드레했고 꾸밈없이 절실한 '돌직구' 가사에는 진정성이 넘쳐났다. '기다리겠소 영원히 이 생명 끝날 때까지/ 사랑하겠소 영원히 저 태양 식을 때까지(기다리겠소).'
하지만 '이 마음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해도 결국 '사랑은 기쁨보다 아픔인 것(사랑했어요)'을 절절히 각인시켰다. 하모니카 연주곡 '한국사람'은 닿을 수 없는 슬픔의 정수였다. '사랑의 가객'이란 수식어는 괜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는 오직 사랑으로 타올랐다. 어느 날 만난 김민기가 '민족'을 얘기하자, 김현식은 '사랑'으로 맞섰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하지만 순수한 사랑과 근원적 외로움은 김현식 음악의 근간을 이뤘다. 순수한 만큼, 또 외로운 만큼 그는 음악에 몰두했다. 건강이 악화돼 입원한 병원에서도 한 소녀를 위해 노래를 불렀다. 그 소녀가 녹음했던 노래들이 'The sickbed live'란 제목의 음반으로 나오기도 했다. 병원을 몰래 탈출해 무대에 서야 했을 정도로 김현식에게 음악은 절실한 것이었다. 사후 최고의 인기를 모은 '내 사랑 내 곁에'의 거칠고 갈라진 목소리는 김현식이 마지막까지 얼마나 음악만을 붙들고 있었는지를 짐작게 한다.
그가 떠난 11월은 김현식을 닮았다. 위대한 가수의 음악과 삶을 반추해보며 쓸쓸함과 순수함에 대한 상념에 잠긴다.
박철응 건설부동산부 차장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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