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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신용카드 소득공제 폐지 시기상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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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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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가 근로소득세제를 개편할 움직임을 보인다. 그 대강을 보면 신용카드 사용액 등 소득공제를 대폭 축소 또는 폐지하는 대신 세액공제 제도를 신설해 고소득 근로자와 저소득 근로자 사이의 소득세 부담의 형평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소득공제 제도에는 신용카드, 의료비, 보험료 공제 등이 있는데 이 중 금액 비중이 가장 높은 것은 신용카드 소득공제다. 신용카드 사용액이 많을수록 소득공제 금액도 많아진다. 따라서 각종 비용 지출이 많은 고소득자는 소득공제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반면 저소득자는 신용카드로 쓸 돈이 적기 때문에 신용카드 공제 제도 조문 자체가 의미가 없다.
정부는 이런 점에 착안해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폐지하거나 대폭 줄이면 고소득 근로자와 저소득 근로자 간 세 부담의 형평이 이뤄질 것으로 믿는 듯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고에는 몇 가지 논리적 모순이 있다.

첫째,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는 근로자 사이의 형평을 위해 도입된 것이 아니라 근로소득자와 자영사업자의 세 부담 형평을 꾀하기 위한 수단으로 출발했다. 그래서 자영사업자는 이 제도를 적용받지 못한다. 예나 지금이나 근로소득자는 자영사업자에 비해 세금 부담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제도가 축소 또는 폐지될 경우 근로소득자가 자영사업자와 비교하며 느끼는 조세 부담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둘째,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의 순기능은 아직도 유효하다. 이 제도는 1999년 8월31일 조세특례제한법에 도입되었다. 2000년부터는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 제도가 함께 실시되었다. 연말정산을 하면서 소득공제를 받고 운이 좋으면 복권에도 당첨되자 근로소득자들의 신용카드 사용액이 급증했다. 이 제도가 정착되면서 음식점 등 자영사업자들의 매출이 노출되고 세금부과 기준(과세표준)이 빠른 속도로 양성화됨으로써 이들의 부가가치세는 물론 소득세와 법인세 납부액이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근로소득자가 부담하는 근로소득세가 경감되는 대신 자영사업자의 숨겨진 세원 노출에 따라 국가 전체적인 조세수입 증대로 이어진 것이다. 따라서 이 제도가 축소되거나 폐지된다면 그동안 애써 구축해 온 자영사업자의 거래 양성화 작업이 후퇴할 수 있다. 박근혜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운 지하경제 양성화에도 역행할 수 있다.

셋째, 소득공제와 세액공제는 그 존재 의미가 크게 다르다. 소득공제는 많이 지출할수록 공제대상 금액도 함께 늘어나지만, 세금 부담 능력이 약한 납세자에 대한 세 부담 경감이 주된 목적인 세액공제는 많이 지출했다고 해서 이를 전부 공제해 주지 않는다. 따라서 세액공제 제도가 공평 과세에 적합할 수 있다는 이론적 근거는 존재한다. 또한 계산구조를 잘 정리하면, 설령 소득공제가 폐지됨에 따라 과세표준이 높아져 산출세액이 늘어나도 산출세액에서 일부를 공제해 주는 세액공제 제도가 도입될 경우 고소득자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고 저소득자의 세금 부담이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소득공제 총액에 상한선을 두거나 한도를 설정하는 등의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고소득 근로자와 저소득 근로자의 세금 부담 형평은 꾀할 수 있다. 어쩌면 세율 인상 등 공평 과세의 본질적인 면에는 애써 눈을 감고, 그저 처리하기 손쉬운 신용카드 소득공제의 축소나 폐지를 통해 복지 재원을 충당하려 드는 소극적인 자세가 더 문제인지도 모른다.

혹시 정부는 근로소득자를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를 축소하거나 폐지해도 어쩔 수 없이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을(乙)의 신세'로 여기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공평 과세의 첫 번째 단추는 소득세 세율의 인상이다. 그 다음에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를 손봐도 늦지 않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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