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아,저詩]장승욱의 '이사갈 때 보니'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사전만 쉰세 권/할 말 없다/할 줄 아는 말 물론 없다

장승욱의 '이사갈 때 보니'
■ 사전 몇 권이야 예전에는, 가정상비약처럼 구비하는 것이지만, 그 권수가 저 정도 되면 무섭다. '국어사전을 베고 잠들다'라는 책을 펴낼 만큼 우리말을 캐고 살려내고 바로잡았던 이 방면의 선수이다. '할 말 없다'는 말은, 맥락으로 보면 사전만 그렇게 들이 파헤친 자신이 딱해서 할 말이 없다는 것이지만, 그 많은 사전들 속에도 자신의 할 말이 들어 있지 않다는 언외언(言外言)과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말하기도 한 것이다. '할 줄 아는 말 물론 없다'는 '할 말 없다'를 더 심각하게 변주한다. 공부를 아무리 해도 여전히 어눌(語訥)을 벗지 못했다는 겸양어이기도 하지만, 사전은 사전일 뿐 세상 앞에 발언하는 법까지 가르쳐주진 않았다는 얘기를 행간에 숨겼다. 쉰세 권은 그의 사전 보유량이기도 하지만, 그의 인생 햇수를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장승욱은 1961년생으로 작년에 작고했다. 올해 살아 있었다면 쉰세 살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제목의 '이사갈 때 보니'는 저승으로 이사가는 일을 섬뜩하게 품는다. 그는 한때 나와 같은 직장의 동료였던 편집기자였다. 그는 인생 쉰두 권을 읽은 뒤 책을 덮었지만, 나는 그 쉰세 권을 펴들고 있는 셈이다. 말수가 적었던 그는 술자리의 흥이 동하면, 문득 일어나 산울림의 노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불렀다. 그런데 창법(唱法)이 김창완스럽지 않고, 장사익에 가까웠다. 원곡은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에서 '깔고'를 딱 한 번 까는 것이었는데, 그는 '깔고깔고깔고!'로 거푸 세 번씩이나 깔면서 거친 신명을 표출했던 기억이 난다. 오래전 일인 데도 목소리가 귀에 선하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유명 인사 다 모였네…유재석이 선택한 아파트, 누가 사나 봤더니 '엔비디아 테스트' 실패설에 즉각 대응한 삼성전자(종합) 기준금리 11연속 동결…이창용 "인하시점 불확실성 더 커져"(종합2보)

    #국내이슈

  • 칸 황금종려상에 숀 베이커 감독 '아노라' …"성매매업 종사자에 상 바쳐" '반려견 대환영' 항공기 첫 운항…1천만원 고가에도 '전석매진' 비트코인 이어 이더리움도…美증권위, 현물 ETF 승인

    #해외이슈

  • [포토]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방한 [포토] 고개 숙이는 가수 김호중 [아경포토] 이용객 가장 많은 서울 지하철역은?

    #포토PICK

  • 기아 사장"'모두를 위한 전기차' 첫발 떼…전동화 전환, 그대로 간다" KG모빌리티, 전기·LPG 등 택시 모델 3종 출시 "앱으로 원격제어"…2025년 트레일블레이저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국회 통과 청신호 '고준위방폐장 특별법' [뉴스속 용어]美 반대에도…‘글로벌 부유세’ 논의 급물살 [뉴스속 용어]서울 시내에 속속 설치되는 'DTM'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