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아,저詩]유종인의 '저수지에 빠진 의자'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낡고 다리가 부러진 나무의자가/저수지 푸른 물 속에 빠져 있었다//평생 누군가의 뒷모습만 보아온 날들을/살얼음 끼는 물 속에 헹궈버리고 싶었다/다리를 부러뜨려서/온몸을 물 속에 던졌던 것이다/물 속에라도 누워 뒷모습을 챙기고 싶었다//의자가 물 속에 든 날부터/물들도 제 가만한 흐름으로/등을 기대며 앉기 시작했다//물은 누워서 흐른 게 아니라/제 깊이만큼의 침묵으로 출렁이며/서서 흐르고 있었다//허리 아픈 물줄기가 등받이에 기대자/물수제비를 뜨던 하늘이/슬몃 건너편 산을 데려와 앉히기 시작했다//제 울음에 기댈 수 밖에 없는/다리가 부러진 의자에/둥지인양 물고기들이 서서히 모여들었다

■ 의자는 무엇인가. 인체(人體) 중의 엉덩이와 허리, 그리고 다리를 의식하며 만들어진 물건이다. 넙적한 바닥을 두어 엉덩이를 받아내고, 사람의 무릎다리 높이만큼 제 다리를 세워 신체를 들어올리고, 넙적 바닥 뒤쪽에는 등을 받아내는 둥근 판이 솟아 있기 마련이다. 사람이 걸터앉아 있기 좋도록 스스로를 맞춰온 의자는, 충직한 종노릇을 해왔다. 시인은, 그것이 있을 자리가 아닌 저수지 속에 빠져 있는 다리 부러진 의자를 보면서, 그것의 마음을 헤아린다. 의자는 평생 그를 묶어두었던 다리를 스스로 부러뜨려 여기 물속으로 날아왔다. 늘 사람의 뒷모습만 보아왔던 의자가 문득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명색이 의자인지라, 흐르는 물들이 등을 대고 와서 앉기도 한다. 산도 내려와 거기 앉았다 간다. 평생 사람을 앉힌 의자의 상한 다리 사이로 이젠 물고기들이 쉬러온다. 그런 눈으로 가만히 살피노라면, 저 망가진 의자야말로 스스로를 낮춰 세상을 품는 성자(聖者)가 아닌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이수만과 상하이 동행한 미소년들…데뷔 앞둔 중국 연습생들? '허그'만 하는 행사인데 '목 껴안고 입맞춤'…결국 성추행으로 고발 음료수 캔 따니 벌건 '삼겹살'이 나왔다…출시되자 난리 난 제품

    #국내이슈

  • 관람객 떨어뜨린 카메라 '우물 우물'…푸바오 아찔한 상황에 팬들 '분노' [영상] "단순 음악 아이콘 아니다" 유럽도 스위프트노믹스…가는 곳마다 숙박료 2배 '들썩' 이곳이 지옥이다…초대형 감옥에 수감된 문신남 2000명

    #해외이슈

  • "여가수 콘서트에 지진은 농담이겠지"…전문기관 "진짜입니다" [포토] '아시아경제 창간 36주년을 맞아 AI에게 질문하다' [포토] 의사 집단 휴진 계획 철회 촉구하는 병원노조

    #포토PICK

  • 벤츠 신형 C200 아방가르드·AMG 출시 속도내는 中 저고도경제 개발…베이징서도 플라잉카 날았다 탄소 배출 없는 현대 수소트럭, 1000만㎞ 달렸다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대통령실이 쏘아올린 공 '유산취득세·자본이득세' [뉴스속 용어]"이혼한 배우자 연금 나눠주세요", 분할연금제도 [뉴스속 그곳]세계문화유산 등재 노리는 日 '사도광산'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