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안 속초에서 깻잎장아찌를 들고 동서울터미널에서 내려 서울 지하철을 타고 월곡역으로 가는 그 평범한 여정을 따라가면서, 등 뒤에 선 나는 울컥하고 만다. 달의 골짜기(月谷)에 사는 자식은 나의 고국이며, 천 리의 머나먼 길은 순례다. 늙은 순례자처럼 나 또한 월곡에 이르러 다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고단한 낙타에게 물을 먹이면서 해 지는 풍경을 보고 싶었다. 막 차창으로 낙조가 펼쳐지는데 전철은 쉴 틈도 없이 어두운 굴 속으로 들어가버린다는 얘기다. 미아역쯤 와서 자식에게 문자를 날린다. 그때 반대로 가는 노선에 나와 닮은 사람이 지나간다. 어느 평범한 아버지의 길, 그 부정(父情)의 실크로드, 지하철의 일상들. 지푸라기 같은 사내들, 아이를 못 낳는 계집들, 핸드폰을 든 행자들, 경전을 읽거나 눈을 감고 면벽한 사람들 사이에, 60년의 여행자인 시인 하나가 앉아 있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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