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아,저詩]이상국의 'Jangajji Road' 중에서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강변역을 떠나/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낙타를 갈아탄다/이 길은 천리 밖 동해를 떠난 내가/월곡(月谷)에 깻잎장아찌를 전해주는 길/실크로드의 어딘가에 돈황(敦煌)이 있었던 것처럼/낡은 벽화로 가득한 이 동굴에서/나는 대개 경전을 읽거나/눈을 감고 면벽한다/월곡(月谷)에는 자식들이 있다/그들은 나의 고국(故國)이다/(......)/나는 고단한 낙타에게 물을 먹이고/해 지는 풍경을 보고 싶었으나/주린 낙타는 고개를 높이 쳐들고 막무가내/사막의 풍진 속으로 들어간다/나는 경전을 덮고 월곡(月谷)을 향하여/지금 미아역을 지난다고 문자를 날리는데/스크린 도어가 닫히고/언뜻언뜻 맞은편 동굴 벽에/그림자 같은 내 모습이 지나간다

■ 동해안 속초에서 깻잎장아찌를 들고 동서울터미널에서 내려 서울 지하철을 타고 월곡역으로 가는 그 평범한 여정을 따라가면서, 등 뒤에 선 나는 울컥하고 만다. 달의 골짜기(月谷)에 사는 자식은 나의 고국이며, 천 리의 머나먼 길은 순례다. 늙은 순례자처럼 나 또한 월곡에 이르러 다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고단한 낙타에게 물을 먹이면서 해 지는 풍경을 보고 싶었다. 막 차창으로 낙조가 펼쳐지는데 전철은 쉴 틈도 없이 어두운 굴 속으로 들어가버린다는 얘기다. 미아역쯤 와서 자식에게 문자를 날린다. 그때 반대로 가는 노선에 나와 닮은 사람이 지나간다. 어느 평범한 아버지의 길, 그 부정(父情)의 실크로드, 지하철의 일상들. 지푸라기 같은 사내들, 아이를 못 낳는 계집들, 핸드폰을 든 행자들, 경전을 읽거나 눈을 감고 면벽한 사람들 사이에, 60년의 여행자인 시인 하나가 앉아 있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어른들 싸움에도 대박 터진 뉴진스…신곡 '버블검' 500만뷰 돌파 하이브-민희진 갈등에도…'컴백' 뉴진스 새 앨범 재킷 공개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국내이슈

  • 공습에 숨진 엄마 배에서 나온 기적의 아기…결국 숨졌다 때리고 던지고 휘두르고…난민 12명 뉴욕 한복판서 집단 난투극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해외이슈

  • 고개 숙인 황선홍의 작심발언 "지금의 시스템이면 격차 더 벌어질 것" [포토] '벌써 여름?'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PICK

  • 1억 넘는 日도요타와 함께 등장한 김정은…"대북 제재 우회" 지적 신형 GV70 내달 출시…부분변경 디자인 공개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