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권한나의 캐디편지] 고객님은 '면역증강제'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무엇이든 꼭 다섯 번을 물어보시는 고객님이 있었습니다.

"언니, 여기는 거리가 얼마예요?" "75m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진짜 75m야?" "네, 맞아요, 고객님" "정말 맞아?" "네, 맞다니까요" "75m 확실하지?" "네" "그럼, 75m 보고 친다" "휴~" 이정도 물어 보시면 제 머리 위에는 벌써 연기가 모락모락 납니다. 다른 고객님께도 가봐야 하는데 다섯 번 대답할 때까지 도통 저를 놔주시질 않습니다.
몇 홀 지나니 진이 다 빠져 버렸어요. 제 목소리가 작아서도 아니고, 고객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이제 제 인내심도 바닥이 나버렸습니다. 상냥하던 목소리가 조금씩 짜증이 묻어나고 인상도 점점 구겨지고 있었죠.

또 물어보십니다. "언니, 여기 100m 맞아?"라고요. 또 다섯 번을 물어 보실 거란 생각에 저도 모르게 그만 "맞아요! 맞고요! 맞다고요! 확실해요! 진짜 맞아요!!"라고 한꺼번에 다섯 번을 대답해 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지만 그 상황은 민망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잘 넘어가서 다행이지만) 고객님께서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큰 실수인데 말이지요. 그렇게 다섯 번을 대답해 버린 후 잠시 시간이 멈추고 다시 고객님과 눈이 딱 마주치는 순간 서로 "하하하"하고 웃어버렸습니다.
왜 웃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화가 나서 한 제 행동이 고객님께는 코믹했을까요? 저도 고객님의 웃음에 같이 웃음이 나더라고요. 그렇게 시원하게 서로 웃은 후 아무렇지 않게 남은 홀들을 마쳤습니다. 여전히 다섯 번씩 물어보시는 고객님께 또 다섯 번씩 대답을 해드리면서요.

수많은 분들을 겪지만 아주 가끔씩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고객님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은 힘들지만 지나고 나면 지금처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라운드가 되죠. 그날의 날씨까지 기억이 날 정도로요. 그리고 그런 라운드가 많을수록 제 몸에는 어떤 나쁜 균도 이겨낼 수 있는 초강력 면역력이 생겨납니다.



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슈 PICK

  • 韓, AI 안전연구소 연내 출범…정부·민간·학계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해병대원 특검법' 재의요구안 의결…尹, 거부권 가닥 김호중 "거짓이 더 큰 거짓 낳아…수일 내 자진 출석" 심경고백

    #국내이슈

  • 중국서 뜬다는 '주물럭 장난감' 절대 사지 마세요 "눈물 참기 어려웠어요"…세계 첫 3D프린팅 드레스 입은 신부 이란당국 “대통령 사망 확인”…중동 긴장 고조될 듯(종합)

    #해외이슈

  • [포토] '단오, 단 하나가 되다' [포토] 중견기업 일자리박람회 [포토] 검찰 출두하는 날 추가 고발

    #포토PICK

  • "앱으로 원격제어"…2025년 트레일블레이저 출시 기아 EV6, 獨 비교평가서 폭스바겐 ID.5 제쳤다 車수출, 절반이 미국행인데…韓 적자탈출 타깃될까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가짜뉴스 막아라"…'AI 워터마크' [뉴스속 용어]이란 대통령 사망에 '이란 핵합의' 재추진 안갯속 [뉴스속 용어]한-캄보디아 정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