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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나의 캐디편지] 날 울린 첫 번째 고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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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디일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서비스 마인드는 당연히 없었고, 골프는 돈 많은 사람들만이 하는 운동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한 달에 한번씩 버스를 타고 월례회를 오시는 연세 많은 고객님들의 단체팀이 있었습니다.
우리 캐디들은 그 고객님들의 팀에 배치받게 되면 인상부터 찡그렸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야 겨우 알아들으시고 행동도 느려서 진행이 되지 않기로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 팀을 비켜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 중에 한 분, 제 얼굴도 잘 알아보지 못하시고 동반자 분들도 목소리를 듣고서야 누군지 아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시력이 아주 나빠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쓰신 그 분이 제일 걱정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볼 앞에 모셔다 드리고 클럽으로 치실 곳을 가르쳐 드려야 샷을 하시는 거예요.

잠깐만 소홀해도 코스에 있는 돌맹이나 나뭇가지를 치시려고 한 적도 있을 정도로 시력이 나쁘신데 저는 고객님을 이해하기 보다는 늦은 진행에 짜증만 솟구쳐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홀이 지났을까. 고객님께서는 백에 들어있는 조그만 플라스틱 물병을 꺼내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백에는 꽝꽝 얼린 시원한 물병이 들어 있었는데 뜨거운 여름날 그 물병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했습니다. 고객님께 그 물병을 드리자 고객님께서는 뚜껑을 따셔서 제게 건네는 거에요. "아가야, 덥지? 시원하게 마셔봐." 당연히 고객님이 드실 거라고 생각했던 저는 당황했습니다. "아가야, 오늘 고생이 많네. 더운데…. 이거 어제 너 줄려고 밤새 얼린 거야."

저도 모르게 벌써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골프는 그냥 그 자체로도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서비스 마인드는 의도적인 친절과 봉사가 아닌 고객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 고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캐디를 했을까도 의문입니다. 아주 가끔씩 힘든 라운드가 있을 때마다 절 울리신 그 고객님을 생각하며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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