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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가을 갈치/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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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외투를 걸치고 출근길에 오른다
 빼곡한 지하철
 10월이 역을 놓치고
 지하에 숨어든 사람들은 파도처럼 술렁거린다
 모두 한 벌의 결심을 껴입고
 먼 바다를 향해 가는 중인데
 갈치 이빨처럼 날선 목소리가 사정없이 등을 민다

 도착한 녹번역,
 5번 출구에서 은백색 갈치를 다듬는 할머니
 바다의 기억들을 재빠르게 잘라 낸다
 얼음의 각이 날카롭다
 갈치의 나란히 악보를 교정하는 가을
 잊혀진 보르네오 섬의 파도가 채워지고 있다

 한 줌 남은 바다 냄새에
 백색의 갑옷이 출렁거린다


■출근길에 지하철 손잡이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보면, 미안하지만, 그래 갈치 같다. 갈치처럼 꼿꼿하게 서 있는 사람들, 그러나 물론 도무지 그럴 수밖에 없어서 더 애처로운 당신과 나 그리고 당신, 또 다른 당신들. 커브길을 돌거나 지하철이 조금만 흔들려도 이리저리 파도에 휩쓸리듯 휘청하는 우리. 그래도 여기는 아직 바닷속 같은 지하라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곧 분양받을 아파트 생각에 자꾸 실실 웃기도 하지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저 지상으로 나가면 '갑옷'을 여미듯 외투를 단단히 고쳐 입고 두 눈 부릅뜨고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 살아 돌아가기 위해선 하루를 그렇게 살아야 한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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