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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무덤'을 뚫고, 밥 딜런-셰익스피어가 두툼한 책으로 부활한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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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가수와 최고문학가, 두 음유시인은 21세기 허물어진 심금에 위로의 노래를 건네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밥 딜런의 '전집'이 압도적인 분량과 두께로 출간되며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빛나는 문장들과, 음악에 문화를 담아낸 가사 속 글줄에서 우리는 시대를 초월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얻는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와 노벨문학상 수상자 밥 딜런의 '전집'이 압도적인 분량과 두께로 출간되며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빛나는 문장들과, 음악에 문화를 담아낸 가사 속 글줄에서 우리는 시대를 초월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얻는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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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명문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극작가는 속에서 천불이 솟았다. 고상하고 낭만적인 내 작품과 공연은 번번이 평이한 평가를 받는데, 초급학교 밖에 안 나온 ‘그 자식’의 작품엔 왜 사람들이 열광하고 심지어 왕까지 팬을 자처하는지! 신사와 귀족으로서의 품격을 잠시 내려놓은 극작가는 그를 향해 소리친다. 넌 ‘갑자기 출세한 까마귀’일 뿐이라고.

단순한 질시나 스노비즘의 발현이라고 치부하기에 상대는 강력하고 거대해 귀족 작가는 고작 당대의 인정에 일희일비했건만, 그는 ‘만대(萬代)’의 인정을 받는 거장이 돼 있었다. 16세기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유명 극작가, 로버트 그린이 이토록 인정하고 싶지 않아 무시했으되, 더욱 별처럼 빛났던 사내는 바로 ‘인도는 언젠가 잃더라도 그는 사라지지 않는다’던 전설, 윌리엄 셰익스피어였고, 그린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작품보다 당대에 셰익스피어를 비난한 사실로 오늘날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으니 작가로선 여전히 하늘에서도 분통을 터트리고 있을지 모른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 된 <셰익스피어 전집>은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에 맞춰 그의 전 작품을 단 한 권에 담은 국내 유일의 책이다. 번역을 맡은 이상섭 연세대 명예교수는 정년퇴임 후 꼬박 10년을 투자해 번역한 이 책에서 원전이 가진 '운율'을 우리말 '운문'으로 재현해냈다. 사진 = 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 된 <셰익스피어 전집>은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에 맞춰 그의 전 작품을 단 한 권에 담은 국내 유일의 책이다. 번역을 맡은 이상섭 연세대 명예교수는 정년퇴임 후 꼬박 10년을 투자해 번역한 이 책에서 원전이 가진 '운율'을 우리말 '운문'으로 재현해냈다. 사진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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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수록한 전집이 지난해 말 국내에 첫 출간 됐는데, 그 위용이 대단해 독자를 압도함이 있었다. 총 1,808페이지, 두께만 7cm가 넘는 데다 페이지는 2단 편집으로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책을 펼치고 가만 바라보고 있노라면 성경을 마주한 기분이 든다. 마침 지난해는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이라 관련 공연과 평전이 출간되는 등 그를 향한 관심과 조명이 쏟아지는 시기였고, 그 마지막 온점을 그의 전작, 44편을 담은 이 책이 온전히 채워 기념의 의미를 더욱 빛냈다.


“죄로 흥하는 자와 덕으로 망하는 자가 있고
죄의 제재를 피해 죗값을 안 갚는 자가 있고
단 한 번 지은 죄로 죽는 자가 있구나.”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중에서

단행본 형태로 출간된 셰익스피어 전집은 그 형태와 양식도 다양하게 꾸준히 대중 앞에 선보여 왔으나, 한 권에 모든 작품이 수록된 것으로는 이상섭 연세대 명예교수가 번역한 이 책이 유일하다. 기존 셰익스피어 전집의 경우 최소 십 수권은 가볍게 넘기고, 40권 예정으로 23권까지 출간된 전집이 현재 진행 중일 정도. 하여, 갖고 다니면서 보는 책이 아니라 두었다가 두고두고 보는 두꺼운 책이 된 셈이다. 본디 원전에서 셰익스피어가 구사한 ‘5개의 약세 음절과 5개의 강세 음절’을 우리말 운문체로 옮긴 번역자의 공력은 시대를 초월한 작가의 통찰을 재현함과 동시에 입에 머금고 곱씹는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이 귀한 체험을 통해 독자는 가히 거장의 무게가 허명이 아니며, 오늘날까지 빛나는 그 문장의 깊이에서 생전 셰익스피어의 풍성했던(?) 머리칼을 죄 앗아가고 남은 생명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1962년 혜성처럼 음악계에 등장해 시대를 투영한 노랫말로 히피 세대의 대변자로 군림한 밥 딜런은 지난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되며 노래를 문학의 영역으로 가져온 선구자로 재조명 받았다. 사진 = 1967년 영화 '뒤돌아 보지 마라' 스틸 컷

1962년 혜성처럼 음악계에 등장해 시대를 투영한 노랫말로 히피 세대의 대변자로 군림한 밥 딜런은 지난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되며 노래를 문학의 영역으로 가져온 선구자로 재조명 받았다. 사진 = 1967년 영화 '뒤돌아 보지 마라'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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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한 음유시인은 별안간 세계적인 상이 자신 앞에 운석처럼 떨어지자 “자신을 극작가로 여겼던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쓸 때만 해도 ‘역에 잘 맞는 배우는 누구일까’ 등 다른 많은 문제를 고민했을 것”이고, “‘내 작품이 과연 문학인가’라는 고민은 그가 가장 하지 않았을 질문”이라 단언하며 자신의 소감을 전했다. 2016년 세계 문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밥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소식은 그렇게 400년 전의 문호의 고민에 자신의 무덤덤한 감정을 실어 대꾸하는 천연한 팝스타를 단숨에 ‘새로운 거장’ 반열로 끌어올렸고, 공고했던 문학의 영역을 한순간에 뒤흔들며 수많은 추측과 논란을 촉발시켰다.

이유야 어찌 됐든 그는 분명 이 시대의 ‘시(詩)’가 무엇이고 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 음유시인이므로, 이런 그의 수상 소식에 밥 딜런의 ‘문학’이 무엇인지 궁금증에 사로잡힌 독자들은 한달음에 향한 음반매장과 서점 앞에서 고민에 빠져야만 했다. 서점에는 수년 전 출간 된 그의 자서전 한 권이 전부였고, 음반매장으로 향하자니 그의 노래는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곡도 있으되 앨범을 사기까지는 눈으로 그의 문장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더 컸기 때문.

밥 딜런이 쓴 387곡의 가사를 오롯이 담아낸 문학동네의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는 또다른 의미에서 뮤지션 밥 딜런의 '전집'이다. 2004년 미국 사이먼&슈스터 사에서 출간한 그의 가사집을 옮긴 이 책은 이미 그의 노랫말을 문학 텍스트로 읽어낸 미국인의 재바름을 느낄 수 있게 한영대역으로 편집돼 원어의 묘를 생생히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문학동네

밥 딜런이 쓴 387곡의 가사를 오롯이 담아낸 문학동네의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는 또다른 의미에서 뮤지션 밥 딜런의 '전집'이다. 2004년 미국 사이먼&슈스터 사에서 출간한 그의 가사집을 옮긴 이 책은 이미 그의 노랫말을 문학 텍스트로 읽어낸 미국인의 재바름을 느낄 수 있게 한영대역으로 편집돼 원어의 묘를 생생히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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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갈급을 해소할, 그의 숨과 결의 낱알을 한데 모은 책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이 지난해 말 출간 돼 눈길을 끌었다. 총 1,568페이지, 두께가 8cm에 달하는 이 책은 밥 딜런이 데뷔 전인 1961년부터 2012년까지 써 내린 노랫말을 켜켜이 담아낸 창작의 보고로, 31개 정규 앨범의 작사 곡 전곡과 데뷔 전, 혹은 미수록된 99곡 까지 총 387편의 가사가 원문과 함께 실려 ‘미국 음악의 전통 안에서 창조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굶주리고 목말라하는 사람들, 그런데 거대한 곡물 창고는 터질 듯하네
오, 너도 알잖아, 음식은 나눌 때보다 쌓아둘 때 돈이 더 많이 든다는 걸
그들은 말해, 거리낌 없이 행동하라고 너 자신의 야망을 따르라고”

- ‘느린 기차‘ 중에서


서슬 퍼런 비평의 칼날을 세우던 한 노 문학평론가는 고희를 앞두고 생애 처음 낸 시집에서 ‘시는 죽었다’고 적었다. 시가 죽었으니 필연 시인도 다 죽어가는 이 시대에 돌연 밥 딜런의 시와 노래, 암송과 구전의 글줄이 선율을 타고 문학의 영역에 스미듯 들어와 가부좌를 겯고 경을 외듯,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작금의 사건을 뭐라 해야 할까. 무엇이라 정의해야 할까. 그는 우리에게 답이 아니라 물음을 던진다. 10년 전 개봉한 밥 딜런의 전기영화 <아임 낫 데어>는 딜런에 대한 딜런 아닌 이야기를 여섯 배우가 등장, 7가지 그의 자아가 서로 다른 이미지를 통해 하나로 이어지는 구조를 통해 ‘나는 당신이 알고 있는 그 누구도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그의 노래가 LP와 CD, MP3 파일에 담기는 동안에도 시대와 의식을 향한 목소리는 변하지 않고 남아 끝내 혁명을 이뤄냈고, 우리는 이제 밥 딜런을 읽을 수 있다.


셰익스피어 사망 7년 후인 1623년 그의 오랜 친구였던 존 헤밍과 헨리 콘델이 펴낸 희곡집 '제1 이절판(the First Folio)'에 실린 그의 초상화.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 셰익스피어는 이마가 훤히 비어있는 탈모인이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너무 잘 알아서였을까, 그는 "세월은 머리카락을 가져가는 대신 지혜를 준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무했다. 그 지혜로 쏟아낸 주옥같은 작품은 오늘날까지 대중에게 널리 읽히는 고전이 되고 있다.

셰익스피어 사망 7년 후인 1623년 그의 오랜 친구였던 존 헤밍과 헨리 콘델이 펴낸 희곡집 '제1 이절판(the First Folio)'에 실린 그의 초상화.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 셰익스피어는 이마가 훤히 비어있는 탈모인이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너무 잘 알아서였을까, 그는 "세월은 머리카락을 가져가는 대신 지혜를 준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무했다. 그 지혜로 쏟아낸 주옥같은 작품은 오늘날까지 대중에게 널리 읽히는 고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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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꺼운 책 두 권은 가장 동시대적 언어를 품어낸 음유시인이 기록한 장구한 역사서가 아닐까. 셰익스피어 전집을 옮긴 이상섭 명예교수는 셰익스피어를 ‘시인’이라 했고, 밥 딜런의 노래를 옮긴 서대경 시인 역시 밥 딜런의 가사를 두고 ‘희귀한 시의 발견’이라 고백한다. 시(詩)에 담긴 시(時)의 초월성 앞에 우리는 두께나 가격이 아닌 가치를 생각해야 하며, 음험한 시절을 살아내는 우리 마음에 던지는 시의 위로를 기꺼이 받아낼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되물어 봐야 한다. 그때까지 두 시인은 기꺼이 기다려줄 것이므로.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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