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한 마리가 벼랑을 할퀴고 있다. 눈은 무섭게 치뜨고 입은 포효를 하는 듯 벌리고 있으며 굽힌 왼 앞발과 펼친 오른 앞발의 발톱이 금방이라도 생채기를 낼 듯 날카롭다. 뒷발의 한쪽은 배 앞으로 나와 있고 왼쪽 뒷발은 바다를 단단히 딛고 온몸을 미는 탄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오른 앞발과 목덜미와 등줄기를 이루는 생동감있는 곡선일 것이다. 황금빛 털 위에 가로로 펼쳐진 검은 호피문(虎皮紋)이 꿈틀거리는 듯하다. 꼬리는 부드럽게 감겨 아랫배 쪽으로 밀었다. 이미 외형이 정해져 있는 틀 속에 들어앉아야 했을 이 맹수는 그 자태가 자연스러워 지도와는 상관없는 맹호도(猛虎圖)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그림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한 사람 중에 18세 소년 최남선(1890~1957)도 있었다. 그는 1908년 '소년'이란 잡지를 창간하면서 한반도 지도의 형상 안에 호랑이를 그려넣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 기발한 지도는 당시 식민지 우국지사들의 심금을 울렸다.
지도는 지도일 뿐이다. 그 경계를 이룬 선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상상하는 일은 그야 말로 '마음의 눈'이 그리는 그림일 뿐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형상에는 뜻이 있다는 말도 있다. 그런 형상이 빚어지려면 그 내면 속에 뜨겁고 옹골찬 기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 속의 이 호랑이는 이 땅의 겨레붙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말 없는 웅변이리라.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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