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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록 사태를 바라보는 3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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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검찰은 2일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지 않았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가져갔던 청와대 문서관리시스템 이지원 사본에서 대화록 초안의 삭제 흔적과 최종본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관되지 않았다', '삭제 흔적을 발견했다', '봉하마을에 내려갔다 반환된 이지원 사본에서만 대화록 최종본을 찾았다' 이 3문장으로 요약되는 검찰의 발표는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 내용은 아직 특정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각각의 입장에 따라 상반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 때문에 노무현재단쪽에서는 검찰을 향해 "검찰이 수사를 해야지 왜 해석을 발표하나"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같은 퍼즐이지만 정치권의 이해따라 짜맞추기도 제각각인 대화록 파문을 둘러싼 정치권의 3가지 시선을 소개한다.
해석 1 - 노 전 대통령이 사초 은폐시도를 한 것이다.

새누리당은 대화록 파문의 본질을 노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리할 것 같은 사초를 폐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기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4일 "NLL 양보 같은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이 사후에 고의로 삭제된 것이 아닌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고 말했다.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3일 "노무현·김정일 회담에서 무엇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두려웠기에 애초부터 그 역사를 지워버리려 했는지 고백하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새누리당의 이같은 관점은 '노 대통령이 자신의 발언이 세상에 알려질 것을 우려해 대화록을 이관하지 않았다' '대화록 내용 가운데 창피하거나, 알려지기를 꺼려한 내용을 고치느라 초본을 삭제했다'로 요약된다. 하지만 왜 대화록이 이지원 사본에만 담겨있고 원본에 있는지는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2008년 노 전 대통령이 보관중이던 이지원 사본을 반납했을 때 검찰은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어 있는 대통령기록물과 이지원 사본이 동일한지를 조사했다. 당시 검찰은 수개월간의 조사 끝에 원본과 사본이 동일하며 봉하마을 사본에 추가로 더 담겨있는 자료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새누리당은 당시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뚜렷한 설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이같은 해석으로는 설명되지 못하는 부분이 몇가지 있다. '불리할 것 같아 이관하지 않았다'는 해석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노 전 대통령이 국정원에 보관을 지시한 대화록의 존재다. 노 대통령이 정말 사초를 폐기하면서까지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했다면, 국정원에 보관용으로 보관을 지시했던 대화록마저 폐기를 지시하지 않았겠냐는 하는 점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이지원 시스템에서 문서 삭제가 가능하냐 하는 대목이다. 김경수 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은 이지원 문서 삭제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해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규명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새누리당 해석의 가장 큰 전제는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의 내용을 숨겨야 할 무엇인가로 봤냐하는 점이다.

2007년 정상회담 당시 여론은 정상회담에 대해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한국일보가 정상회담 직후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정상회담 직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차 남북정상회담에 성과 있었다고 응답한 응답자는 74%였으며, 성과가 없었다고 밝힌 사람은 21%로 나타났다.

국민들뿐만 아니라 노 전 대통령 스스로도 정상회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11월1일 민주평통자문회의 상임위원회 연설을 통해 "뒷거래는 없었다"며 "다음 정부가 해야 될 일을 많이 해결해 주고 온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은 "어느 정부가 하느냐에 따라서 남북정상회담이 순조롭게 굴러가는 경우도 있고 이런 저런 사고가 나서 안 가는 수도 있고, 잘못 가는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인사는 "청와대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고 전했다. 문제가 될 것 같으니 '대화록은 기록물로 남기지 말자'라고 할 정황은 없었다.

게다가 노 전 대통령은 기록물에 중요성을 유독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 시절 제작된 기록물은 이전 정부에서 제작된 것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기록물을 만들었다. 또한 대통령기록물 관리법도 노 전 대통령 임기 중에 만들어졌다.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이관하지 않았다는 해석은 노 대통령이 기록물 대해 보여왔던 태도와는 정반대인 셈이다. 더욱이 노 전 대통령은 대화록 같은 기밀 문서의 경우 최소 15년~최장 30년 개봉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두었다.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이 이관한 기록물이 정치적 후폭풍을 일이키는 사안이 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해석 2 - 후임 대통령을 위해 노 대통령이 기록물을 남기지 않았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을 배려해서 기록물을 이관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한다. 이는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이 올해 2월 검찰에 한 진술에 기반한 해석이다. 조 비서관은 검찰 수사에서 노 전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들이 대화록을 볼 필요가 있을 때 활용할 수 있도록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국정원에 보관하게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지정기록물의 열람은 엄격히 제한된다. 현직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지정기록물 등을 열람하는 것은 불법이다. 조 비서관이 검찰에 밝힌 바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지정기록물로 지정하지 않음으로써, 후임 대통령들이 법률 위반 등의 부담을 지지 않은 채 대화록 등을 열람할 수 있게 해준 셈이다.

공개된 회의록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준비에 꽤 공을 들인 것으로 나타난다. 노 전 대통령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에서 "이번에 이 많은 공부를 해 왔는데...", "다음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여러가지 고민도 많이 하고 준비를 많이 했습니다." 등 준비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또한 공개된 대화록을 보면 노 전 대통령은 대화 후반부로 갈수록 김 전 국방위원장과의 대화에서 자신감이 붙은 모습이 엿보이기도 한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전 국방위원장과 남북간의 주요현안 문제에 있어서 장시간 대화하고 협상을 벌였던 자신의 경험은 이후 북한과의 회담, 특히 김 전 국방위원장과의 회담에서 유용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남북간의 현안에 관련해 김 전 국방위원장과 이처럼 다양한 심도있고, 장시간 나눈 기록은 대화록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대화록이 후임대통령을 위한 ‘김정일 사용설명서’라고 봤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이같은 판단 이면에는 노 전 대통령이 회의록을 국정원에 한 부 보관하라고 했던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남북정상회담 등의 창구는 한국은 국정원, 북한은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다. 후대 대통령의 경우에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때 반드시 추진주체 등으로 나서야 하는 곳은 국정원일 공산이 큰 셈이다. 국정원에 보관해 후임 대통령이 참고할 수 있게 했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같은 해석에도 문제점이 있다. 첫재 조 전 비서관이 보이는 모호한 태도 대문에 이같은 해석에 확신이 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 전 비서관은 노무현재단과의 접촉도 자제하는 등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민주당 및 친노진영에서는 조 전 비서관이 밝힌 주장을 100%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이 중요한 내용을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반자였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몰랐겠냐는 점이다. 참여정부 당시 마지막 비서실장이었던 문 의원은 대통령기록물 이관을 책임졌는데, 그가 노 전 대통령의 이같은 결정을 몰랐다는 것은 설명하기 어렵다. 또한 김경수 본부장은 "대통령이 지시를 하면 지시카드가 만들어진다"며 "대통령이 삭제 등을 지시했다면 명령을 했다는 근거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같은 지시가 있었다면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공개했을 텐데,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은 배려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주장의 설득력을 약화시킨다.

해석 3 - 정말로 모르겠다. 검찰과 퍼즐맞추기를 해야 한다.

김 본부장은 4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지원에서 문서 삭제가 이뤄질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초안의 경우 기록물로서 가치가 없기 때문에 문서 이관 대상에서 빠졌는데 이를 검찰이 삭제라고 봤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지원에 보관되어 있는 기록물 가운데 기록물로서 가치가 없는 자료들은 대통령기록관에 이관 목록에서 제외함으로써 이관시키지 않았는데, 대화록 초안의 경우는 최종본이 기록물이기 때문에 제외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김 본부장은 왜 대화록 최종본이 대통령기록관에 이관되지 않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요약하면 '초안은 기록물로서 가치가 없기 때문에 이관되지 않았다', '대통령기록관에 이관 목록에서 제외된 것을 검찰이 삭제한 것으로 오해한 듯하다', '봉하마을에 옮겨졌던 이지원 사본에서만 나왔는지 모르겠다' 인 것이다.

김 본부장은 노 전 대통령의 기록물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를 설명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폐기 가능성은 강력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그는 대화록이 대통령기록관에 넘어가지 않은 것을 비정상으로 보면서도, 이에 대한 자료를 전혀 갖고 있지 때문에 방어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민주당 일부에서는 여전히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기록관에 자료가 손을 탔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검찰이 2008년 봉하 마을에 있었던 이지원 사본과 대통령기록관에 있는 원본이 동일하다고 확인했다. 그렇다면 사본에 있는 대화록이 원본에 없을리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원본에 대화록이 없다는 것은 뭔가 잘못됐다는 설명이다.

노무현 재단측은 일단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김 본부장은 대화록과 관련된 쟁점에 있어서, 자신들이 갖추지 못한 자료를 검찰 수사 내용을 통해 확인해보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검찰조사 과정에서 검찰 조사 내용을 보고 저희도 퍼즐맞추기를 같이 해야하죠"라고 말한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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