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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피플&뉴앵글] 변화하는 인도..도심속 '카스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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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렌드라 자다브

나렌드라 자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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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더러운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허리춤에 빗자루를 매달고 다녀야 합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실 수도 없습니다. 사원에 들어가 신께 기도 드릴 수도 없습니다. 신성한 곳이 더럽혀진다는 이유로 그곳에 그림자도 드리울 수 없습니다.

신이 우리에게 주신 권리는 오직 하나, 구걸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우리가 천하게 태어난 것은 전생에 지은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와 닿는 것만으로도 오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은 불가촉천민(不可觸踐民, Untouchables), '달리트'입니다.
나렌드라 자다브 -신도버린사람들 中-


인도 최하층민, 불가촉천민의 삶을 표현한 책 '신도버린사람들' 의 저자 나렌드라 자다브(Narendra Jadhav) 는 인도 불가촉천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서부터 가지는 신분 '카스트'를 무너뜨리면서 인도 중앙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하고 지금은 국제적 명성을 지닌 경제학자로 자리 잡은,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인도의 살아있는 영웅이다.

인도사회가 변하고 있다. 나렌드라 자다브는 한가지 예에 불과하다. 과거 카스트에 의해 결정됐던 직업과 계급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하층카스트의 활발한 사회진출과 교육의 기회로 인해 부와 지위를 축적한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접촉이 많아지면서 표면적으로는 카스트의 벽이 허물어지게 됐다.
인도의 역사 속에 수천년동안 뿌리를 내리고 있고 지금은 지구상 거의 유일하게 존재하는 제도화된 신분제도 '카스트'. 원래는 포르투갈 인들이 사용한 단어로서 힌두경전 '리그베다'의 창조신화에 등장하는 고대 인도의 계급제도인 '바르나(Varna)를 의미한다.

힌두교에서는 신이 카스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리그베다'는 인간의 계급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태초에 우주의 본질을 상징하는 거대한 신 '푸루샤'가 자신을 희생해 인류를 창조했는데 푸루샤의 입은 사제인 '브라만'이 되었고 팔은 군인계층 '크샤트리아'가 되었다. 허벅지는 상인계급 '바이샤'가 되었고, 두 발에서는 노예인 '수드라' 가 탄생하였다. 이 네 계급은 색깔이라는 의미를 가진 바르나 제도, '사성제'라 불린다. 그리고 사성제이 들지 못하여 '아웃 카스트라고 불리는, 수드라보다도 더 낮은 최 하층민인 '불가촉천민' 이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카스트제도

교과서에 나오는 카스트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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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는 벤츠와 BMW승용차가 지나다니고 달과 화성으로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오늘날에도 인도에는 이러한 신분제도 즉 카스트가 존재한다. 옛날 조선시대의 '반상제도'와 같은 이 카스트는 오늘날까지 사회, 문화 등 전반에 있어서 인도인의 일상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은 인도사람들이 여전히 자신의 카스트를 따라 살고 있는지 궁금해 한다. 카스트의 개념이 희미해져버린 현대 도심 속에 살고 있는 나로선 대답하기가 참 애매하지만 굳이 대답할 때는 '대도시에는 더 이상 카스트가 존재하지 않고 시골에는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점차 사라지는 추세' 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스트제도를 중·고등 교과서에서 처음 접하는 거 같다. 교과서에는 단순히 브라만은 제사장, 크샤트리아는 왕, 귀족, 바이샤는 상인, 농민, 수드라는 수공업자, 노예로 분류해 왔기 때문에 보통 높은 카스트는 부자, 낮은 카스트는 가난한 사람 이라는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카스트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대도시에서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도시에서 인도인들은 40도가 넘는 날씨에서도 막노동을 하고, 다른 집 경비를 서고, 허드렛일을 하고, 릭샤(인력거)를 몬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모두 하층 카스트 출신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이들 중에는 브라만, 크샤트리아들도 많다. 반대로 대도시에 소재하고 있는 기업에 근무하고, 승용차 한 대씩 정도 가지고 있는 대리, 과장, 심지어는 사장들 중에도 수드라 또는 불가촉천민 출신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릭샤왈라. 릭샤를 모는 것은 고되고 힘든 일이지만 대도시에선 이들 중 상층카스트 출신들도 많다.

릭샤왈라. 릭샤를 모는 것은 고되고 힘든 일이지만 대도시에선 이들 중 상층카스트 출신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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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천년동안 인도사회에 내려져온 카스트가 도심 속에서 붕괴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천민에 대한 공직 및 대학 쿼터 할당이다. 인도정부는 1947년 독립 후 카스트제도의 비인간성과 인권유린 등 문제점을 인식해 1950년 이를 철폐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일체의 차별을 금지하는 '보호를 위한 차별법(Protective Discrimination)' 을 제정한다.

이 법에 따라 불가촉천민에게 일정비율의 정부공직과 주 의회, 연방의회 의석이 할당 되었고 공립학교와 공립대학에도 일정비율(약20%)의 불가촉천민 입학을 의무화 했다.

그래서 이후 불가촉천민을 '지정 카스트(Scheduled Caste)' 라 부르게 되었고 인도사회의 최 약자인 이들도 대학을 가고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그러자 인도인 중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수드라가 반발하고 나섰고 다수가 원칙인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인도는 이들에게 30%의 공직진출 쿼터를 주었다. 그래서 불가촉천민과 수드라에게 총 50%의 공직쿼터가 배정되었고 이는 하층민들의 사회진출을 가속화 시켰다.

두 번째로는 도시에서의 생활에서 찾을 수 있다. 델리와 뭄바이는 공식적으로 1000만이 넘는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이다. 이곳에서 한사람이 하룻동안 만나고 스쳐지나가는 사람만 수백명 내지 수천명이 될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카스트의 율법에 따른 삶을 유지하기가 곤란하다. 사람들로 빼곡히 차 있는 버스나 기차 안에서 카스트를 따질 수 있겠는가 말이다.

세 번째로는 직업에 있다. 인도의 카스트는 직업의 숫자만큼 많이 존재한다. 과거 카스트는 각자가 하는 일에 의해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개방 후 직업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고 새로운 직업의 등장으로 카스트의 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가령 동물가죽을 다루는 일은 천민들이 했지만 이들은 다른계급이 천하다고 피할 때 가죽으로 구두, 가방 등의 제품을 만들어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사회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녀들에게 해외유학 등 많은 교육을 시켜 성공하게 했다.

또한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마케팅, 금융, IT 등에 관련된 무수한 직업들이 탄생하고 이는 '직업은 곧 카스트'란 체계를 흔들고 있다.

카스트는 인도의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이다. 그러나 그 뿌리가 너무 견고하고 인도인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서 이를 무너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겨왔다.

하지만 인도사회가 지난 1990년대 초 경제개방을 단행한 이후 대도시를 중심으로 혁명적으로 변하고 있다. 인도가 글로벌 경제권에 편입되면서 시대에 뒤떨어지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이념에 위배되는 신분제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리고 카스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점차 바뀌고 있다.

2050년 인도는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미국을 제치고 중국 다음가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경제학자들은 전망한다. 카스트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개개인의 능력과 자질에 의해서 인정받는 11억 인도사회가 된다면 이는 결코 허상이 아닐 것이다.

글= 여진환
정리= 박종서 기자 jspark@asiae.co.kr

◇ 기계 분야에 관심이 많은 여진환 씨는 현재 Uttar Pradesh (이하U.P) 주립공대 IEC college 기계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2006년부터 인도생활을 시작한 진환씨는 한국인들이 쉽게 오해할 수 있는 인도의 단면을 소개하고자 유학생 칼럼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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