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봤니? 엔젤투자]"일확천금 노려선 안돼..경험쌓고 안목 길러야"

100여명 몰린 강연…대체투자처로 주목
엔젤투자매칭펀드 예산은 수년간 ‘0원’
"전문엔젤 자격요건 낮추되 교육 강화를"

지난 8일 서울 역삼동 팁스타운에서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주최하는 '엔젤리더스포럼'이 열렸다. 전문가의 엔젤투자 노하우와 우수 스타트업의 IR발표를 듣는 자리였다. 코로나 여파로 온라인으로만 열리다가 3년 4개월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린 이번 행사에 100여명이 몰렸다.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엔젤이 되고 싶거나, 엔젤투자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포럼에 참석했다.

"다년간 경험쌓고 시행착오 겪어야"

이날 강의한 20년 경력의 엔젤 이상학 고벤처포럼 부회장은 "엔젤투자에 대한 관심이 예전보다 크게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 코인, 주식 투자가 시들해지면서 대체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며 "산업적·국가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최근 정부가 규제 개혁, 글로벌 진출 등 스타트업을 위한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국가 미래발전을 위한 엔젤투자가 빛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부회장은 "일확천금을 노린 엔젤투자는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다"면서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좋은 기업을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2015년 'AI엔젤클럽'이라는 모임을 만든 최성호 회장도 "1~2년 동안 한두 개 스타트업에 투자해 성공하길 기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잘 선별한 다수의 스타트업에 오랜 기간 투자하면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노하우를 전했다. 최 회장의 본업은 치과의사다. AI엔젤클럽에는 교수, 변리사, 세무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직 종사자 30여명이 모여있다. AI엔젤클럽은 전체 투자 비중의 40%를 차지하는 헬스케어를 비롯해 바이오, IT, 자동차, 핀테크 등 여러 업종에 투자하고 있다. AI엔젤클럽은 그동안 54개 기업에 225억원을 투자해 67억원을 회수했다. 투자한 기업들은 총 1872억원의 후속투자를 유치했다. 지난해 중기부 장관상을 받은 넥스트드림엔젤클럽(대표 태성환)도 벤처캐피탈(VC) 심사역, 의사, 변호사 등 140여명으로 구성됐다. 2018년에 설립된 넥스트드림엔젤클럽은 그동안 스타트업 17곳에 초기투자를 했고, 이 중 10곳이 후속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냈다.

고소득 전문직 엔젤이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세제 혜택이 크다는 점 때문이다. 연소득에서 각종 공제를 뺀 과세표준 3억원인 사람이 1억원을 투자했다면 5900만원을 공제받아 소득세 2242만원을 절세할 수 있다. 투자확인서를 제출하면 근로소득자는 연말정산 때, 사업소득자라면 5월 종합소득세 신고 때 세금을 돌려받는다. 단 반드시 3년간 해당 증권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득공제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이미 받은 세금 혜택을 토해내야 한다. 엔젤투자 금액에 대해 소득공제를 인정해주는 기한은 투자 후 3년까지다.

저변 넓히려면…매칭펀드·전문엔젤 늘려야

엔젤은 개인이 직접 투자하거나 49명 이하의 소수 인원이 모인 개인투자조합을 만들어 투자한다. 정부가 시스템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투자자가 오롯이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는 장치도 거의 없다. 2000년 벤처버블이 꺼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엔젤이 손실을 입고 시장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세제 혜택 확대 외에 뚜렷한 정부 지원책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법 개정을 통해 개인투자조합을 운용하는 업무집행조합원(GP)의 출자금 총액을 5% 이상에서 3% 이상으로 완화한 정도다. GP가 되려면 전문엔젤이어야 하는 등 요건이 있고,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일반인도 가능하다.

국내 엔젤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유명무실해진 '엔젤투자매칭펀드'를 되살려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엔젤투자매칭펀드는 엔젤이 선투자하면 정부(한국벤처투자)가 최대 2.5배수까지 매칭 투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2011~2015년까지 엔젤투자매칭펀드 16개가 결성된 이후로 대부분 해산 완료됐고, 신규 결성이 되지 않으면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당초 정부는 총 3000억원 규모까지 조성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1950억원에서 끝나버렸다. 업계에선 "한국벤처투자가 기획재정부를 설득해 예산을 받는 데 실패한 것 아니냐"는 쓴소리가 나왔다.

전문엔젤이 5000만원 이상 투자한 기업은 벤처기업인증을 받을 수 있다는 큰 특혜가 있다. 하지만 전문엔젤이 되려면 투자실적(최근 3년간 투자금액 합계가 1억원 이상)을 충족해야 할 뿐만 아니라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이거나 박사학위 소지자여야 하는 등 자격요건이 까다롭다. 엔젤투자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 대신 전문엔젤 양성 교육 체계를 강화하면 된다는 것이다. 한 엔젤은 "실전에 적용할 만한 전략과 함께 투자 실패 사례도 활발하게 공유돼야 한다"고 말했다.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를 막는 '유사수신행위 규제법'에 때문에 홍보활동을 하지 못하고 투자자를 알음알음 모집해야 하는 것도 한계점으로 지적됐다. 또한 엔젤투자를 촉진하려면 인수합병(M&A) 등 중간 회수시장이 더욱 발달해야 한다.

영국은 정부가 지정한 적격기업에 투자해 3년 이상 주식을 보유한 엔젤에게 투자금에 따라 소득세를 깎아주고 양도세를 면제해주고 있다. 투자손실을 본 경우 일부를 보전해주기도 한다. 엔젤이 사망하기 전 최소 2년간 지분을 보유한 경우 상속세를 경감하는 조치도 취하고 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