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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보다 한 푼이 더 급하죠" '이천 화재사고' 남일 같지 않은 일용직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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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경기 이천시 한 물류창고서 화재 발생…사망자 38명
희생자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안타까움 더해
일용직 노동자들 "당장 돈이 급해서 나오는데 내가 알아서 조심하는 수밖에"

4일 오후 서울 중구에 있는 한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이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고 있다.사진=김연주 인턴 yeonju1853@asiae.co.kr

4일 오후 서울 중구에 있는 한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이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고 있다.사진=김연주 인턴 yeonju185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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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김연주 인턴기자] #인천의 한 건설현장에서 근무하는 일용직 노동자 한모(61)씨는 3개월 전 작업용 사다리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쳤다. 하지만 산업재해 처리가 어려울뿐더러 개인 보험조차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게다가 당장 일을 그만둘 수 없는 형편 때문에 아픈 허리를 붙잡고 현장에 나가 통증이 더 심해지고 있다. 한씨는 "병원비가 부담돼 치료할 엄두는 커녕 쉬지도 못한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 쉴 수 있겠냐"며 "현장에서도 다치면 당장 일을 못 하니까 내 손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털어놨다.


#세종시의 한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 황모(58)씨는 최근 발생한 이천 물류창고 현장 화재사고 소식이 남 일 같지 않다고 전했다. 작업 현장 곳곳에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20여년 가까이 일용직 노동을 해온 황씨는 그동안 여러 번의 인명피해를 목격했다. 그는 "찰과상은 너무 빈번히 일어나고 높은 업무강도, 위험한 환경 탓에 몸이 성한 사람이 거의 없다"며 "어디에서 어떻게 다쳐도 이상할 게 없는 환경이다. 작업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놀랍지도 않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발생한 경기도 이천의 한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 화재사고로 38여명이 목숨을 잃은 가운데 이전부터 지적돼온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망 문제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게다가 해당 사고 사망자 38명 중 신원이 확인된 29명 중 상당수가 전기·도장·설비 업체 등에서 고용한 일용직이었으며, 중국인 1명, 카자흐스탄 2명 등 외국인 3명도 사망자로 확인돼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되고 있는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피해 유가족들이 오열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 이천시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마련되고 있는 이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합동분향소에서 피해 유가족들이 오열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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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용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목숨 걸고 일한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공사현장에서의 이중 삼중 안전망 확보 요청은 이들 처지에서 할 수 없다. 일용직 신분이다 보니, 현장 소장 등 윗선 눈치가 보여 아예 말을 꺼내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김모(56)씨는 "단기간으로 일하는 사람이 작업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하면 (업체가) 듣겠냐"며 "위험해도 이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내 뒤로 빼곡하게 줄을 서 있다. 돈을 버는 게 급하니까 그냥 일한다"고 밝혔다.


이어 "군소리하지 않고 시키는 일을 하면 된다"며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일거리도 줄어 누가 먼저 일거리를 손에 쥐느냐가 관건이라 더 시키는 대로 한다"고 토로했다.

상황을 종합하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에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게 할 수 있는 환경 개선의 목소리는 이들 처지에서 사실상 사치에 가까운 셈이다. 사측이 먼저 나서 안전망 확보에 공사 예산을 투입하는 등 상식적인 운영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도 이천의 한 물류창고에서 발생한 화재사고 현장.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도 이천의 한 물류창고에서 발생한 화재사고 현장.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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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용직 노동자들의 현장 피해 사고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용노동자는 상용노동자와 달리 소득의 형태가 일급이나 시간급으로 이뤄져 4대 보험을 포함한 복지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렇다 보니 공사현장서 다치는 경우, 일용직 노동자 입장에서는 일도 못하고 치료도 제대로 못받는 이중고에 처해있다. 이천 화재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안타까운 목소리가 현장 인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경찰은 이천 화재 공사현장 발주자 한익스프레스와 시공사 건우의 화재 보험 가입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사고 희생자들이 개별 보험에 가입했는지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희생자 대부분이 하청업체를 통해 고용한 일용직으로 제대로 된 피해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일용직 노동자 한씨는 "일을 정규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까 보험을 드는 게 꺼려진다"며 "일반 보험사에서도 일용직 노동자라고 하면 가입절차가 까다로워 알아보다가 관뒀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나만 주의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사고만 있는 게 아니지만, 조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다치면 아픈 것보다 당장 밥줄이 끊기니까 그게 문제"라고 토로했다.


노동·인권·시민사회단체 등 71개 단체 연대기구는 지난달 30일 긴급 공동성명을 내고 철저한 사고 원인 규명을 통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단체들은 "위험 물질을 쌓아두고도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노동자의 알 권리도 보장하지 않는 현장, 위험한 상황에서 강요되는 무리한 공사, 책임을 분산시키고 위험을 아래로 전가하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 부실한 관리·감독 등 참사가 반복되는 구조적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며 "이런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발주처와 시공사는 책임에서 빠져나가고 하청업체 말단 관리자만 책임지는 일이 많았다. 제대로 책임을 묻지 않으면 이런 일은 다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무엇보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 산재를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문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천 화재로 희생된 분들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자다. 전기, 도장, 설비, 타설 등의 노동자들이 물류창고 마무리 공사를 하다 날벼락 같은 피해를 입었다"며 "노동절을 맞아 다시 한번 불의의 사고 앞에 숙연한 마음으로 명복을 빌며 이 땅 모든 노동자의 수고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이어 "고국에서 꿈을 키우던 재외동포 노동자의 죽음도 참으로 안타깝다. 가족들을 진심으로 위로한다"고 덧붙였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김연주 인턴기자 yeonju185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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