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깨나 뀌는 어느 공공기관의 A 임원 얘기다. 그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골프광이다. 한때는 그린 좋기로 소문난 B골프장에서 살다시피했다. B골프장은 A와 업무 연관성의 혐의가 짙었다. 라운딩 상대도 대부분 '을'이었다. 적절치 않은 '갑질'은 뒷말을 낳았다. 안팎에서 손가락질하자 그는 '쿨'하게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A는 잠시 자중했지만 그린과 아주 작별하지는 않았다. 빈도는 줄었지만 여전히 눈치껏 B골프장을 누볐다. 그 무렵 그의 라운딩 이름이 바뀌었다. 이미언. '이미 언더를 친다'.
니콜라스 고다드 교수는 맨체스터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가르쳤다. 25년간 학생들과 살갑게 지냈다. 그런 그에게는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 올드 닉(Old Nick). 그는 이 이름으로 오랫동안 포르노배우 생활을 해왔다. 뒤늦게 이 사실이 밝혀지자 학교는 발칵 뒤집혔다. 그는 항변했다. "포르노를 보는 사람들이 포르노 연기를 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위선적이다. 내가 사적인 공간에서 무엇을 하느냐는 전적으로 내 자유다." 그는 당당하려 애썼지만 도덕적인 결함이 너무 컸다. 낮에는 존경받는 교수, 밤에는 잘 나가는 포르노 배우였던 그는 결국 학교를 떠나야 했다.
사람을 뜻하는 '퍼슨(person)'의 어원은 '페르소나(persona)'다. 그리스 시대에 연극 배우가 얼굴에 썼던 가면에서 따온 이 말을 심리학자인 칼 융은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은 1000개의 페르소나(가면)를 지니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관계를 이뤄간다." 이를 다시 인용하면, 따뜻하거나 차갑거나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이거나 권위적이거나 순종적이거나 이 모든 것이 페르소나다. 어쩌면 인격까지도.
대중과 호흡하는 정치인도 페르소나가 중요하다. 존 F 케네디는 시민권력에 기댄 자유주의의 페르소나였고, 덩샤오핑은 흑묘백묘에 의지한 개혁개방의 페르소나였으며, 정조는 탕평책에 의탁한 정치개혁의 페르소나였다. 저들의 페르소나는 지치지 않는 열정과 도전, 용기로 역사 속에 각인됐다. 순간의 인기영합이나 잠깐의 눈속임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