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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의 책 다시 보기] 문익점의 목화가 조선의 배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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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생태환경사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공유된 역사 전통 중 대다수는 15~19세기에 새롭게 창조된 기억이며, 이러한 기억은 생태환경을 구성하는 여러 요인들의 변화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
생태환경사를 통해 한국사회경제사를 재정립하고 이를 역사교육의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관련 연구를 꾸준히 해온 김동진 한국교원대학교 교수의 신간 ‘조선의 생태환경사’는 15~19세기 조선시대 한반도의 생태환경의 대변화, 그리고 그 생태환경의 변화가 한국인의 삶을 어떻게 그 전과는 크게 다른 양상으로 바꿔 놓았는지를 미시적인 시각으로 살펴본다. 이 시기의 야생동물, 가축, 농지, 산림, 미생물, 전염병 등 우리를 둘러싼 생태환경 전반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

생태환경의 변화와 인간의 삶 간의 역동적 상호 작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목화가 불러온 변화다. 고려 말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가 조선 사회에 미친 영향은 복식문화의 변화를 훨씬 넘어선 그야말로 전(全) 사회적인 것이었다. 고려 말까지 비단, 모시, 삼베,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던 사람들은 목화 덕분에 바람이 잘 통하면서도 가볍고 질긴 면포로 만든 옷으로 한 해를 따뜻하고 쾌적하게 보낼 수 있었다. 이는 여인네들의 노동 절감으로 이어졌다. 부의 축적과 교환의 수단으로도 자리 잡았다. 해운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더 넓고 크게 만들어진 면포 돛 덕분에 조선의 배는 더 커졌고 더 많은 짐을 싣고서도 더 민첩하게 항해할 수 있었다. 일본과 여진은 중요한 국가적 자원이 된 조선의 면포를 구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면포는 조선에게 부를 안겨주었고, 여진과 왜구를 제어할 수 있는 외교력의 원천이 되었다.
면포 수요의 증가는 목화 재배의 확대로 이어졌고, 이는 한반도 생태환경의 연쇄적 변화를 촉발했다. 하삼도(下三道, 충청·전라·경상도)의 산림지대 중 목화를 재배할 수 있는 곳은 급속히 밭으로 바뀌었고, 화전 개발을 촉진했다. 이로 인해 밭으로 개간된 산림에서 살아가던 야생동물들은 서식처를 잃게 되었다. 사람과 가축, 야생동물 사이의 접촉 증가는 미생물의 생물학적 거래를 유발하여 전염병에 의한 생태적 재앙을 불러오기도 했다.
이렇듯 인간의 삶은 생태환경에 급속한 변화를 가져오고 그렇게 변화된 생태환경은 다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미생물도 사람들을 더욱 건강하고 강인하게 만들기도 하고 심각한 질병을 만연시키기도 한 양면적인 존재였다. 약으로 치료하는 것보다 음식으로 건강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시한 조선에서는 다양한 미생물이 포함된 음식으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의 세계에 살던 미생물은 묵묵히 조선인의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가꾸는 동반자가 되었다. 누룩으로 빚은 술과 약과, 젖산 발효로 만들어지는 김치, 콩을 삶아 곰팡이로 발효시켜 만든 장 등은 대표적인 미생물 음식으로 조선인의 식생활을 향상시켰다. 그러나 일부 미생물의 교환은 사람과 가축에게 전염병의 만연을 가져오기도 했다. 15~16세기 누구도 피하기 어렵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가장 대표적인 질병이었던 이질은 벼농사를 중시해 냇가를 개간한 조선이 감당해야 하는 숙명이었다. 농사꾼에게 가족이었던 소에서 유래한 홍역과 천연두는 조선시대에 널리 성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휩싸이게 했다. 우역(牛疫)은 15~19세기 한국인에게 소중한 자산이었던 소의 대량 폐사를 유발해 백성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생태환경사는 생태와 인간, 인간과 생태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결국 이 세상의 삶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라는 것, 그 주고받음 속에서 인간은 자연과 함께이며 나아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이다.생태환경사는 저자가 설명하듯 1926년 러시아의 과학자 베르나드스키가 ‘생물권(Biospere)'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이래 ‘관계론적 생물학’‘가이아’‘온생명’등으로 심화 확장되면서 아날학파 등 역사학계에서 새로운 흐름을 형성한 역사학의 분야다.
한국사 연구에서도 생태환경사 연구의 지평이 최근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는 고고학, 인류학, 민속학, 미술 및 음악사, 지리학, 의학, 분자생물학 등 여러 학문 분야의 성과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국에선 이제 막 첫 발걸음을 떼고 있는 단계인 생태환경사의 개척자 역할을 하고 있는 저자는 자기소개에서 “생태환경사를 통해 동이불화(同而不和)의 20세기를 넘어 화이부동(和而不同)의 21세기를 열어가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는데, 이는 ?세기 한국사회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갈구하고 있다”는 그의 인식과 잇닿아 있다.

저자가 말한 대로 기후변화, 종다양성의 감소, 생물학적 교환과 바이러스 변이 등이 인간의 삶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위기감을 불어넣고 있다. 그런 현실에서 과거 인간의 역사적 활동과 생태환경의 변화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과거를 탐구하는 것이자 “다가올 미래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시도”다. 그의 연구에 주목을 보내줘야 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아시아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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