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핵합의는 이미 파기 수준에 접어든 것 같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최대 업적 가운데 하나인 이란과의 합의를 뒤집는 셈이다. 유엔과 EU도 어렵게 성사시킨 이란 핵합의를 충실히 지킬 것을 한 목소리로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핵합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것이 미국 국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을 테러위험국으로 간주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이란 핵합의를 두고 "최악의 협상"이라고 비난해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무기 이전과 테러 지원, 다른 국제규범 위반 등 이란의 악의적인 행동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미국과 이란간의 핵합의 파기가 현실화된다면 북한 핵문제 해결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이란은 핵 개발 중단을 조건으로 서방에 경제제재 해제를 약속받았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다시 이란에 대해 더 강경한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와 핵협상을 통해 제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김정은 정권으로서는 역시 믿을 것은 핵무기밖에 없다는 생각을 더욱 강고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배신 트라우마'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북핵 문제 해결과 관련해 중요한 전환점이자 돌파구로 평가받았던 1994년의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부터 시작해 2005년의 9.19 공동성명 등은 미국의 배신으로 파기되었다는 것이 북한측의 확고한 생각이다.
결국 트럼프의 이란 핵합의 파기 시도는 김정은이 지난해 7차 당대회에서 항구적 전략노선으로 천명한 경제핵개발 병진노선, 즉 항구적 핵보유 고수 정책을 정당화시키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여진다. 북한은 이미 국제무대에서 사실상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에 더는 응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왔다. 북한은 앞으로 핵보유국으로서 '핵군축'에만 응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북미간 대화나 협상이 진행될 가능성도 낮다. 트럼프 주변에는 섣불리 북한과의 평화협정 협상에 나서지 말고, 한반도의 '냉전 상태'를 유지하라고 공개적으로 주문하는 이도 있다. 어렵게 핵합의가 이뤄져도 핵폐기라는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까지는 갈 길이 너무 멀다. 북한이 완벽하게 미국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 한 핵문제 해결은 요원한 과제임을 다시 한번 절감케 한다.
한반도의 평화는 상당부분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달려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트럼프 시대에는 생각을 조금 달리해야 할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특정 나라에 우리의 운명과 안보를 맡기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국제공조도 중요하지만 자주ㆍ자강형 국방안보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읽힌다.
임을출 교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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