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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가을,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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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응 건설부동산부 차장

박철응 건설부동산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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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기간제 교사였고 여자는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정규직 교사였다. 취업 형태가 장애물이 될 정도로 허약한 사랑은 아니었다. 그들은 결혼했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여자가 외쳤다. "아, 이런 곳에서 살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 여행 가서 으레 하는 말이 아니었다. 막연하긴 했지만 여자는 오랫동안 꿈꿔 온 듯했다.

남자의 가슴은 불타올랐다. 돌이켜보면 대학원까지 나왔고 흔히 말하는 '성공'을 소망한 적도 있었으나 현실의 삶은 주변부를 맴돌았다.
여자를 깊이 사랑하는 남자는 미래가 분명해졌다고 생각했다. 단순해져야 했다. "그녀를 위해, 또 나를 위해" 결단했고, 몇 해 뒤 제주도로 내려가 감귤 농사를 시작했다.

가진 것이 변변치 않은 젊은 부부가 제주도에서 초보 농사꾼으로 살아가는 일은 물론 녹록지 않았다. 아이도 태어났다. 남자는 공사장을 찾아다니며 '투잡'까지 해가며 고군분투했다. 몸은 고달팠지만 그는 행복했다. "돈이 필요하긴 하죠. 하지만 도시에서처럼 많이는 아니에요. 봄 되면 나물 캐고, 바다에서 해산물 끌어다 먹고…. 마음이 편하니까 몸 힘든 건 괜찮아요. 친구보다 좋은 직장, 좋은 차 갖고 싶은 게 도시의 상대적인 행복이라면 여기서는 '절대 행복'을 느껴요."

몇 해 전 취재했던 30대 청년의 이야기다. 그처럼 도시의 삶에 지치고 진정한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난 때문인가. 제주도에 사람이 몰리고 땅값, 집값이 치솟는다. 중국인들도 꾸준히 제주도 땅을 사들이고 있다. 가히 '제주도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서울이 한강 때문에 그나마 숨 쉴 틈을 찾는 것처럼, 제주도는 대한민국의 숨구멍 같다. 그 존재만으로도 마음 속 한쪽이 서늘해진다.

그룹 들국화 출신 가수 최성원씨는 1987년 멤버들의 대마초 사건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제주도를 찾았다. 그곳에서 위안을 얻었고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로 시작하는 '제주도 푸른밤'이란 노래를 지었다. 그리고 그는 몇 해 전부터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

노래 속 '푸르매가 살고 있는 곳'이란 가사의 '푸르매'가 늘 궁금했다. 박성룡 시인이 '풀잎'이란 시에서 "'풀잎'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 속에서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라고 했던 것처럼, 푸르매가 나오는 대목에선 가슴에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푸르매는 최씨가 노래를 지을 때 묵었던 집 주인의 여섯 살배기 딸 이름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이제 제주도는 이효리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정말로 그대가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떠나요 제주도 푸른밤 하늘 아래로." 심지어 외로움의 구원처라니. 가을이 맹렬해지고 있다. 그 섬엔 못 가더라도, 발은 땅을 딛고 있더라도, 자주 하늘을 올려봐야겠다.





박철응 건설부동산부 차장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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