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슴에는 꽃사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종류만큼이나 생김새도 크기도 다양하다. 무스 또는 엘크라 불리는 북방의 사슴은 어깨높이가 2m를 넘고 700㎏까지 나간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보면 덩치뿐만 아니라 두부(頭部)를 언뜻 보아서는 말인지 사슴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세계화의 시대에, 이 급속도로 변하는 사회에서 말과 사슴의 구분은 지조를 지킨다고 되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 파사현정(破邪顯正)하거나 진충보국(盡忠報國)하는 비장한 자세도, 멸사봉공(滅私奉公)이라는 시대착오적 레토릭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무원은 기본적인 것, 공과 사의 구별(公私有別)에서 출발하는 분별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규율의 대상과 물리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고 살펴보아야 올바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는 국내에서 전혀 경험이 없던 메르스 진단을 처음 해 낸 삼성병원의 실력은 어쨌든 대단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삼성병원은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공중보건은 공공부문이 맡을 일이다. 하지만 윈-윈 할 수 있는 관련 공무원들이 자신의 본분을 잊음으로써 삼성병원의 쾌거도 빛이 바래고 말았다. 학생의 실력이 아무리 특출하다고 해도 시험감독이나 출제, 채점까지 그 학생에게 맡기면 그게 어디 선생인가?
공공부문 내부를 보자. 지록위마는 너는 누구고 나는 누구냐, 즉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정해진 답이 나오게 한다. 무엇이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전문성 없는 행정관료가 득세할 발판이 여기서 마련된다. 공공부문이 전문가와 자체적 역량을 갖추지 않는다면 민간부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좀 더 거시적으로 보자면 탈규제니 민영화니 하는 친기업적 정책방향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배태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재규제(re-regulation), 협력규제(co-regulation)로 정책방향을 선회한 지 오래다. 우리나라에서도 정통관료라면 회전문 인사의 추세에도 불구하고 민간부문과의 분별, 공공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규제지식과 체계를 바탕으로 하는 규제의 질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다.
김환학 서울대 행정연구소 특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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