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이 6.25전쟁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국가기록원은 2013년부터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에서 6.25전쟁 관련 사진 7000여 매를 수집ㆍ정리 중이고, 그 중 일부를 국가기록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고 밝혔다. (사진제공=국가기록원)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전쟁의 잔혹함을 나타내는 방법은 많다. 그중에 한 눈에 보여주는 것이 바로 숫자다. 6ㆍ25 전쟁이 발발한지 65주년을 맞이하는 25일 군사편찬연구소가 제시한 숫자는 전쟁의 잔혹함을 한눈에 보여준다.
0=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은 전차를 앞세워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우리 군이 갖고 있는 전력의 수치는 '0'이었다. 전차도, 전투기가 한대도 없었다. 육군은 개전당시 8개사단과 2개 독립연대에 소속된 병력 9만 4000여명이 전부였다. 군은 당시 91문의 곡사포와 27대의 장갑차가 전부였다. 해군도 36척의 소형함정이 고작이었고 공군은 전투기 한대 없었다. 반면 북한은 전차 242대를 비롯해 야포 565문, 박격포 875문은 물론 해군에는 115척의 함대를 보유했다. 공군도 전투기 84대, 저공습격기 113대 등 226대를 보유했다.
166,026,783= 6ㆍ25전쟁 당시에도 군장병들에게 담배는 보급됐다. 바로 1종 보급품 중 하나였던 '화랑연초'다. 재고와 재보급 수량을 고려하지 않은 수치이지만 당시 보급된 화랑연초는 약 1억6000만 갑에 달한다. 이밖에 백미는 65만 가마, 고추장은 752톤, 된장은 2800톤이 보급됐다. 간식거리였던 건빵은 500만 대(袋)가 보급됐다.
2,392,829,200= 전쟁에서 심리전을 이용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수단이 바로 전단지다. 일명 '삐라'로 불린다. 미국과 우리군도 6ㆍ25전쟁 당시 삐라를 사용했다. 1953년 5월까지 B-29, B-26 같은 폭격기를 활용해 총 24억 장에 가까운 전단지를 뿌렸다. 1953년 2월 중순부터 살포 지역을 적 전진부대 후방지역에서 적 후방 해안지역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당시 미군은 북한 동해안을 따라 96개 목표 지점에 살포 작전 비행기가 총 47회 출격했다. 전단지 살포 항공기들은 의도적인 저공비행으로 적진의 병사나 민간인들이 미군 항공기를 식별할 수 있도록 했다.
104,635,965= 전장에 뿌려진 총탄과 포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1951년 한 해 동안 국군이 소모한 M1 소총탄(실탄)은 1억463만5965개에 달하며 카빈 소총탄은 3633만662개나 됐다. 같은 기간 국군의 수류탄 소모량은 미국산과 한국산을 합해 141만9589개였으며 60㎜ 박격포탄은 128만339개였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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