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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금융기업 고임금, 탐욕 뒤에 도사린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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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민 국제부장

백종민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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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봄 해군 장교 전역을 앞두고 있던 때 기자의 눈동자가 한 신입사원 모집 공고 앞에서 멈췄다. '△△투자신탁'.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여기다'. 이 회사 월급이 중위나 일반 제조기업 신입사원 연봉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지원을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일차 관문은 통과했다. 면접일이 잡혔다. 아뿔싸. 구축함을 타고 동해안을 항해해야 하는 날이었다. 앞이 깜깜했다. 신입사원 연봉 상위 1%에 포함될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선상에서 통화가 가능한 육지 쪽으로 휴대폰 안테나를 향하고 간신히 담당자와 통화했다. 저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면접 일정을 조정했다. 휴가를 얻어 면접을 봤다. 어려운 과정을 거쳤지만 합격했다.
합격 소식을 들은 행정관(상사)이 "과장님 월급은 얼마입니까?" 물었다. 얼마 정도라고 말했더니 깜짝 놀란다. 그렇게 월급을 많이 주는 직장이 있느냐는 투다. 당연히 제대 턱을 크게 내야 했다.

그리고 6개월 후, 대한민국은 외환위기를 겪는다. 금융업 불패 신화는 송두리째 깨졌다. 많은 금융인들이 거리로 내밀렸다. 그사이 기자로 변신했다. 금융인일 때보다 월급은 적었지만 만족도는 훨씬 높았다.

굳이 이런 얘기를 꺼내 경제의 혈액이라는 금융과 금융인의 역할을 곡해하려는 의도는 없다. 많은 금융인들이 새벽부터 저녁까지 고객 응대, 신상품 개발, 주식ㆍ채권ㆍ외환매매를 위해 노력하며 고생하고 있는 것을 잘 안다.
다만 그 보상이 지나치다는 것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것보다 많은 보상은 전체 집단의 시기 대상이 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융계는 많은 급여를 지급하는 업종으로 통한다. 일확천금을 노리며 증권가에 입성하겠다는 젊은이들이 생기고 아이비리그 졸업생들이 줄지어 월스트리트에 입성하려는 것은 결국 돈을 많이 주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사회는 이런 상황을 용인했다. 아니,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금융위기 이후 성난 시민들은 금융계에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뉴욕 월스트리트 인근 공원에는 성난 청년들이 모여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구호로 장기간 시위를 벌였다. 금융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다. 미국ㆍ영국 등 금융선진국들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와 직원들의 급여와 보너스에 본격적으로 메스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5년이 지나고 세계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이자 금융계는 다시 잔치를 벌이고 있다. 늘어난 인수합병(M&A)과 증시 호조로 해외 주요 금융기업들의 연봉과 보너스는 과거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다. 영국 싱크 탱크 리솔루션 파운데이션에 따르면 2013년 금융업 정규직 근로자 중 임금이 상승한 비율은 50%였다. 최상위권은 아니었지만 다른 산업 종사자 대비 임금 상승 비율이 높았다.

이런 시점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금융기업의 고임금이 경제 성장에 도움이 안 되며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선진국들이 더 이상의 금융업 확대에 주력하는 것을 우려한 대목이라 볼 수 있다.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주인공 고든 게코는 "탐욕은 좋은 것(Greed is good)"이라고 했다. 신 자유경제 시기에는 그랬다. 그런데 시대가 달라졌다. 탐욕은 탐욕일 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이 된 파생상품이 등장한 것도 더 많은 돈을 벌겠다고 금융인들이 만들어 낸 괴물이었다. 탐욕 뒤에는 언제든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OECD의 보고서를 읽으며 기자 역시 금융인이 되면서 탐욕을 부리진 않았나 되새겨 봤다. 솔직히 그랬던 것 같다. 문득 당시 행정관(기자보다 15살 많은 인생 선배였다)에게 사과하고 싶다. 박 상사님, 제 사과가 너무 늦은 걸까요? 보고 싶습니다.






백종민 국제부장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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