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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선칼럼]달라이 라마의 '불교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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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는 1990년대 초 불교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가르침이 인간의 부와 노동, 소비와 행복 등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를 고민했다. 종교 지도자로서 절대 빈곤, 정체된 삶의 만족도, 환경 파괴 등 세계가 안고 있는 난제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기질적으로 사회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한 그는 공산주의와 불교사상을 결합할 공통의 테마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자유시장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는 침체해 가는 것을 보면서 의문을 품게 된다.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오류는 무엇이고 자유시장경제의 긍정적 측면은 무엇인가. 그러던 어느 날 네덜란드 출신의 경영 컨설턴트 라우렌스 판 덴 마위젠베르흐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불교와 자본주의를 결합시키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마위젠베르흐의 제안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달라이 라마는 자유시장경제가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걱정하면서도, 우리의 고통을 줄이고 삶 전반에 대한 만족감을 높이려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마음으로 자본주의와 소통하기로 했다. 티베트 불교의 교리와 자본주의의 원칙이 조화를 이루며 모든 이들의 '참 행복'을 위한 새로운 경제체제로 눈을 돌렸다.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불교의 가르침과 자본주의의 결합을 위한 달라이 라마의 긴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자본주의가 위기라고들 한다.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포럼 창립자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우리는 죄를 지었다"며 "이제 자본주의 시스템을 개선할 때가 됐다"고 했다. 신자유주의 전도사로 불리던 그가 '죄인'을 자처할 정도니 자본주의가 위기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위기의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공정한 경쟁과 인간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지 못한'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1%의 탐욕'이 재앙을 불렀다는 반성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다고 하지만 경제력은 소수의 대기업에 집중돼 있다. 고용 없는 성장에 계층 간 양극화, 불평등 구조는 날로 깊어지고 있다. 통계청의 가계 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득분배 지표인 지니 계수는 지난해 0.031로 전년의 0.030보다 비록 조금이지만 더 나빠졌다. 중위 소득의 50% 미만 소득계층 비율인 상대적 빈곤율도 15.2%로 전년보다 0.3%포인트 높아졌다.
그 이면에는 재벌 중심의 한국식 자본주의가 낳은 부작용에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골목상권은 물론 빵집, 순대, 떡볶이 사업 등에까지 진출해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 시장 상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는 대기업의 무절제가 자리하고 있다. 그 앞에선 경제민주화니,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 공생발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니 하는 건 사치스러운 얘기일 뿐이다.

짐작했겠지만 '불교 자본주의'의 요체는 '뻔하다'. 우리 모두의 참 행복을 위해서는 바른 눈(正見)으로 보고 바른 일(正業)을 해야 한다는, 도덕적 경제체제를 지향한다. 내가 어떤 일에 대해 생각하고 결정을 내릴 때 내 개인뿐 아니라 내 생각과 결정에 좌우되는 모든 사람에게 득이 되는 길이 어떤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 한마디로 탐욕을 버리라는 얘기다.

달라이 라마는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세계화도 정부와 기업이 현명하게 대처하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봤다. 정부는 기업가 정신을 북돋워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기업은 그 토양 위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이윤의 사회 환원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그런 줄 너무도 잘 알고 있을 사람들이 무절제한 탐욕에 빠져 그 '뻔한 일'을 하지 않고 있으니. 언제고 한번 큰 사달이 나지 싶다.



어경선 논설위원 eu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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