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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우리가 잘못했다, 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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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대라서 안심했던 우리동네 무너지던 날

자연은 건드린 만큼, 성난 흙더미 돌려주더라
비는 막을 수 없겠지만 산사태는 예방 가능한 재앙


[아시아경제 황석연 사회문화부장]산이 좋아 산밑에 살았다. 집값이 오르지 않아도 맑은 공기를 맡으며 산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종점이나 다름 없는 버스정류장에서 텅빈 버스를 타고 출근할 때도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등산로 입구에서 바라보는 가파른 산길이 든든한 위안이 된 것은 물론이다. 큰 비가 내려 서울 시내 저지대가 침수됐다는 뉴스 보도를 접할 때도 (미안하지만) 위안을 삼았다. 해발 300m가 넘는 고지대에 사니 물난리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란 기대에서다. 집값이 오르지 않아도 나는 그렇게 내 동네를 사랑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산은 변신을 거듭했다. 등산로 입구에 목재계단으로 만든 새길이 생겨났고 나무벤치가 놓여 산을 찾는 사람들 모두를 즐겁게 했다. 육산도 아닌 돌산에 믿지 못할 참사가 발생한 건 지난 27일이었다. 이날 아침 나는 늘 그렇듯 버스정류장에 섰다. 아침 6시가 조금 안된 시간. 빗줄기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지만 이 아름다운 버스 종점과 등산로 입구가 마지막 만남이 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발단은 이날 아침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동안 내린 '집중호우'에 있었다. 등산로 입구엔 시간당 60㎜가 넘는 강한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졌다. 무려 200㎜가 넘는 비가 한꺼번에 내린 것이다. 오전 8시30분. 아내의 전화가 걸려왔다. 거대한 물줄기가 토사를 끌어안고 산속에서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위가 구르는 소리도 제법 크게 들린다고 했다. 그러려니 했다. 그 순간 편집국도 바빠지지 시작했다. 산사태 소식이 들리고 사람이 매몰됐다는 뉴스가 나오는 데 불과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퇴근길에 다시 같은 버스를 탔다. 1시간을 넘게 달려간 버스는 신림동 골짜기에 접어들자 승객들을 토해냈다. 더 이상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나는 걷기 시작했다. 경찰 저지선을 뚫고 터널앞을 지날 때 토사에 묻힌 승용차가 끌려나오는 것을 보았다. 구겨진 종이처럼 처참한 모습이었다.
다시 산길을 따라 집으로 향했다. 즐겨다니던 산길과 진입로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30여분을 더 걸어갔더니 출근길 버스 종점이 나타났다.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진 버스 종점. 움푹 패여 흔적조차 없어진 등산로 입구에는 거대한 돌과 흙들이 계단을 가로막고 있었다. 황폐함 그 자체였다. 굴삭기 한 대가 복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곳을 가보니 조그만 배수구가 돌과 흙더미에 파묻혀 물길을 인도로 돌린 듯 했다. 다음날 아침에도 이 지역에는 시간당 47.5㎜의 비가 쏟아졌다. 무너진 터널은 채 복구되지 않았고 끊어진 버스를 기다리다 지친 나는 츨근 버스를 타기 위해 다시 40분 이상을 걸어야 했다.

이날 서울에서는 내가 사는 금천구 삼성산(호암터널 상부)을 비롯해 서초구 우면산, 강남구 대모산, 강북구 북한산 등 곳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이들 지역은 모두 서울시가 지난 4월 산사태 가능성이 없다고 선언한 곳들이다. 아까운 생명을 잃은 춘천 신북과 포천의 산사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7월27일 하룻동안 벌어진 이번 산사태를 겪으면서 분명히 깨달은 것이 있다. 자연이 준 선물을 오래 간직하려면 못 하나를 박는 데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고 자연은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가장 좋은 생태보존 방식이라는 것이다. 손을 대면 댈수록 도시 미관은 나아지고 삶은 더 편리해질 지 모르지만, 물먹은 산이 언제 또다시 분노한 토사를 뱉어낼 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 비가 우리에게 교훈을 남겨준 것이 있다면 집중호우는 막을 수 없어도 산사태는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난개발로 산을 파헤치고 배수로 확보도 없이 나무를 뽑아 산길을 만들거나 멀쩡한 산을 절개해 펜션을 난립시키는 어리석음만 저지르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황석연 사회문화부장 sky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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