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우리의 '과학의 날'은 1933년 김용관이 찰스 다윈의 50주기를 기념해 4월19일을 '과학 데이'로 정한 것이 최초였으며, 1967년 4월21일 과학기술처가 중앙 행정기관으로 독립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했다. 이후 매년 과학의 날을 전후해 1주간을 과학주간으로 정해 각종 학교 및 관련단체에서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요즘처럼 국민생활에 과학이라는 용어가 깊숙이 들어온 때도 없을 것이다. 원자력, 방사능, 피폭, 베크렐(Bq)이나 시버트(Sv)처럼 거의 처음 들어보는 방사능의 단위, 발음도 어려운 세슘이라는 물질 등. 전에는 부러진 팔다리나 가슴 사진을 찍을 때의 원리가 X-선이라는 것만 알면 충분했는데 매체들이 온갖 방사선의 종류를 알려줄 뿐 아니라 학교 다닐 때 머리를 아프게 했던 원소 이름과 감도 오지 않는 크기의 단위들, 거기에다 여기저기서 방사능이 검출되었다,
또 그것이 인체에 영향이 있다, 없다 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또 무엇을 먹어야 할지, 먹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는 것이 학창시절 과학시험을 볼 때처럼 우리를 갈등하게 만들고 이런 상황에서 과학이 우리와 가까워지는 것인지 아니면 더욱 멀어지는 것인지 과학자의 입장으로서도 헷갈릴 지경이다.
물론 과학자들이 집중해서 자연의 원리를 풀어나가기 위한 연구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정확하게 사회에 전달하고 더불어 사회와 소통하는 것 또한 소중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미래사회는 과학기술 발전이 주도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또한 과학기술 없이 현재의 우리 생활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말하는 좋은 기술, 개발해야 하는 기술이 꼭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핵에너지, 줄기세포, 광우병 등 몇 가지 사례에서 소통이 안 될 경우 엄청난 갈등이 생기고 사회적 비용이 낭비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한쪽에서 아무리 안전하다고 말해도 사회가 안심할 수 있도록 소통하지 않으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도 경험한 바 있다. 과학이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니고 정말 우리 생활과 가깝고 같이 가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볼 때 더욱 확실해진다.
또 한 번의 과학의 달을 맞으며 과학자들이 사회와의 소통을 기꺼이 즐겁게 할 수 있는 풍토가 만들어지고, 주도하는 개념이 아닌 합의를 통해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사회를 기대해 본다.
한미영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대외협력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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