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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2도]역사 왜곡과 납득 가는 각색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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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영화 '1947 보스톤' 손기정 연기
진실에 근접하며 설득…숭고한 정신도 기려
꾸며낸 허구도 대중 위한 신파와 거리 멀어

"영웅은 무슨. 일본 사람 이름으로 기록에 남은 거지." 영화 '1947 보스톤'에서 손기정(하정우)은 식당에 눌러앉아 술로 한을 달랜다. 밖에서 한창 진행되는 베를린하계올림픽 마라톤 우승 열 돌 축승회를 외면한다. 사람들은 절망과 좌절을 이해하지 못한다. 개인적 영광을 부러워할 뿐이다. "아니, 손기정 세계제패 10주년 기념 마라톤이 열리는데…. 이러고 있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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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감독이 꾸며낸 허구다. 실제로는 선배인 김은배, 권태하의 인도를 받아 대한문 앞 단상에 올랐다. 체육시보사에서 준비한 승리의 관을 머리에 얹고 이승만 박사, 김구 선생의 축사에 화답했다. 손기정은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에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일제의 탄압으로 귀국 환영회조차 받아 보지 못했던 내게 더없이 영광스러운 의식이었다. 10년 만에 되찾은 감격이요, 기쁨이었다."

역사 왜곡보다 납득이 가는 각색에 가깝다. '1947 보스톤'은 서윤복의 1947년 보스턴마라톤대회 우승 과정에 초점에 맞춰져 손기정의 속내를 들여다볼 여지가 적다. 올림픽 우승 뒤 10년은 고난의 시간이었다.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일본 경찰의 그림자가 뒤따랐다. 입학한 보성전문에서 선배들이 환영식조차 열지 못할 정도였다. 손기정은 결국 다시는 육상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메이지 대학에 입학했다. 더 이상 이름을 빌리지 않을 테니 어디에도 나타나지 말고 쥐 죽은 듯 엎드려있으라는 압박이 있었다.


또 다른 아픔도 있었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데 이어 아내마저 간장염으로 잃었다. 마라톤 보급 운동도 난관에 빠졌다. 일본이 갈수록 불리해지는 전황을 만회하기 위해 조선을 더욱 들볶고 있었다. 구실만 있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부역을 지시하거나 학병으로 끌고 갔다. 손기정도 이름깨나 났다 해서 학도병 모집에 강제 동원됐다. 총독부가 시킨 대로 학병 지원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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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보스톤'은 생략된 불운과 치욕의 흔적을 온전히 배우 하정우의 연기에 기댄다. 근심 걱정이 떠날 줄 모르는 얼굴과 울분이 감도는 목소리는 강한 힘을 발휘한다. 변주를 절제한 무미건조한 표현으로 희화화될 여지를 차단하며 숭고한 정신을 기린다. 하정우는 "감정, 충동, 생각 등의 제어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흑백으로 나타나는 베를린하계올림픽 마라톤 시상식 장면을 찍을 때부터 온몸이 얼어붙었다. 교과서 등에 실려 온 국민에게 익숙한 역사적 순간 아닌가. 막상 연기하려니까 부담되더라. 내가 이걸 표현할 자격이 되는지 의심까지 들었다. 모든 신에 의미를 부여하고 신중하게 접근했다. 식당 식탁에 엎드려있는 장면조차 그랬다. 사전 조사로 오욕과 비운으로 점철된 세월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걸 잃어버린 사람처럼 표현해도 될 것 같았다. 실제로도 서윤복이 유일한 희망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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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과정은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기 위해 조작하는 신파가 아니다. 오히려 역사를 반영하려는 형태 또는 형식에 가깝다. 시종일관 실존 인물의 진실에 근접하며 관객을 설득한다. 그것만으로도 감성적 접근과 능동적 개입은 가능해진다. 국민적 영웅이 그토록 바라고 바랐기에…. "나의 마지막 소망은 후배 마라토너들의 힘찬 승전가를 들으며 눈을 감는 일뿐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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