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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시와 음악의 황홀 속으로 19]어벤쥐드 세븐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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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은 얼마나 근사한 말인가.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 사랑에 도취되는 일, ‘나’를 앗아가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일. 어벤쥐드 세븐폴드(Avenged Sevenfold, 이하 ‘세븐폴드’)가 그랬다. 세풀투라(Sepultura)나 슬립낫(Slipknot)을 가끔 감상했지만 가까이 두지는 않았다. 훌륭하지만, 모두 사랑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우연하게 만난 세븐폴드가 나를 빨아들였다. 유튜브에서 파이브 핑거 데쓰 펀치(Five Finger Death Punch)를 듣다가 플러그를 꽂은 세븐폴드. 첫 만남은 싱글 <산 채로 묻혀(Buried Alive)>였다. 발라드로 시작해서 중반부에 메탈 리프 출현. 이후 한 번 더 곡의 구조를 바꾸어 헤드 뱅잉을 유발하는 노래. 일곱 살 하윤이가 머리를 흔들면서 에어 기타 연주를 보여주는 노래. 세븐폴드의 힘과 기술이 잘 결합된 명곡. 또렷하게 각인되는 드라마틱한 선율 뒤로 강력한 기타 연주가 시작된다. 머리를 앞뒤로 움직여야 한다. 상승 상승 상승 중이다. 5분 무렵, 두 번째 전환. 세차게 머리를 움직인다. 현기증이 찾아온다. 두개골이 덜컹거린다. 1분 40여 초 동안 맛본 행복. 진정이 되기 전에 전동 드릴처럼 빠르게 돌진하는 <타고난 살인자(Natural Born Killer)>. 이어드럼이 찢어질 것 같다.

세븐폴드의 데뷔 앨범을 열어본다. 데모 앨범 둘 이후, 2001년 첫 정규 앨범 <<일곱 번째 트럼펫 소리내기(Sounding The Seventh Trumpet)>>가 발매된다. 보컬리스트 섀도우즈(Shadows)의 ‘노래’를 접할 수 없다. 멜로딕 데스 메탈(melodic death metal) 분위기의 울부짖는 보컬. 그라울링 그라울링(growling) 더하기 스크리밍(screaming)으로 불타는 메탈코어 음악을 견디고 즐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2003년 앨범 <<망자 깨우기(Waking The Fallen)>>부터 외치기를 줄이는 세븐폴드. 섀도우즈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이들에게 변화가 찾아온다. 대중들이 이들을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섀도우즈의 노래 실력을 확인한 후, 그가 한 마리 짐승처럼 그르렁거리던 음악을 듣는다. 인내력 지수의 상승과 더불어, 왜 아까운 노래 실력을 썩혔던가 하는 후회와 노래 부르기를 잘했다는 안도의 동시병발을 경험한다. 이 앨범에는 이전 음악 색채가 남아 있다. 노래의 양이 늘어날수록 이들은 성공한다.
2005년 앨범 <<악의 도시(City Of Evil)>>에서 세븐폴드는 메탈코어를 ‘생매장’하고 모든 곡을 온전히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세븐폴드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상업적인 성공과 음악적 명성을 한꺼번에 획득한다. <야수와 더 할롯(Beast And The Harlot)>, <불태워버려(Burn It Down)>, <박쥐 나라(Bat Country)>로 이어지는 메탈 메탈 메탈. 속도감은 롤러코스터 같고, 부피는 적란운 같고, 질량은 천 톤짜리 해머 같다. 기존의 메탈 장르에서 들을 수 없었던, 끊어지지 않는 가사의 연쇄. 산문시처럼 이어지고 이어지는 문장과 연주에 청자는 난타 당한다.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의 영향을 받은 랩 신택스(rap syntax)를 메탈 음악에 적용한 새로운 시도라고 부를 만하다. 드러머 레브(The Rev)의 기관총을 쏘는 듯한 빠른 드러밍이 청량하다. 가마솥더위에 지친 여름날 저녁의 거리에서 이들의 음악을 땀에 젖은 피부 아래로 주입한다면, 당신은, 메탈릭 샤워를 하는 셈이고, 3분이 지나기 전에 차가운 쇠가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세븐폴드는 시원하고 드라이한 토네이도이다. 하윤이가 다시 찾아와서, 이거는 박쥐 노래잖아, 하면서 맑게 웃는다.

음악은 주관적인 것이다. 모차르트를 듣는다고 머리가 좋아지지는 않는다. 고전음악을 틀어준다고 아이의 정서 함양과 지능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도 있다. 클래식 ‘음악’이 아니라 그것의 고급스런 이미지만을 고가에 매입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음악에 등급 매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음악의 상업적 효과만 노리는 장사꾼들. 참 많다. 어디를 가도 흘러넘치는 음악이 우리를 질식시킨다. 음악 소비 시대에 진정한 음악은 찾기 어려워졌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최고라는 사람들도 많다. 틀리지 않았다. 가끔 남이 좋아하는 음악을 증오하거나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혐오하는 경우가 문제이다. 음악은 절대적인 아름다움이지만, 언제나, 확고한 주관성 속에서 작동한다. 군가를 부르면서 울어본 경험이, 술 취해 트롯을 불러본 적이 있는가. 아이들의 삐뚤빼뚤한 동요를 같이 부르면서 미소 짓는 사람들이 꽃피우는 행복은 어떠한가. 음악은 상대적인 것이다. “음악이란 것은 음정이나 타이밍이 아니며 이런 모든 요소들 사이의 심리적 긴장의 축적과 해소도 아니며, 심지어 연주자나 관객이 연주 중은 물론이고 이전과 이후에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것도 아”니다.

음악은 음악 그 자체이다. “음악은 우리가 단지 귀를 통해서가 아니라 온몸으로 창조하고 듣는 어떤 것”이다. 음악은 아우슈비츠에도 있었다. 올림픽 개막식장에도, 국회의원 선거 유세 트럭에도, 열병하는 연병장에도, 촛불을 든 광장에도 있다. 음악은 내 가슴 앞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음악은 나의 귀로 들어와서 전기신호로 바뀐 후 대뇌에서 감정과 가치로 귀결되겠지만, 그것만으로 음악의 시작과 종말을 말할 수는 없다. 음악은 과거와 현재 사이, 모든 곳에, 모든 것에 거주한다. “어떤 사람이 힙합 밴드인 퍼블릭 에너미나 록 성향의 트렌트 레즈너의 음악을 매우 시끄럽게 자주 트는 가정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이지 리스닝 음악의 유의성을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세스 호로비츠, <<소리의 과학>> 중에서) 음악의 아름다움과 가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어떤 음악이 나에게 ‘행복’을 주었다면, ‘그 음악’이 아름다운 음악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하윤이는 행복을 준 밴드 중 하나로 세븐폴드를 기억할 것이다. 먼 훗날 세븐폴드를 다시 듣게 된다면, 그때도 헤드 뱅잉하면서 아빠 얼굴을 행복하게 떠올릴 것이다. 음악은 그 순간에 존재할 것이다. 하윤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세븐폴드의 노래는 <악몽(Nightmare)>이다. 모순적이다.
2009년 천재적인 연주를 보여주었던 드러머 레브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세븐폴드는 새 드러머로 꿈의 극장(Dream Theater) 출신 마이크 포트노이(Mike Portnoy)를 영입한다. 앨범 <<악몽>>에는 프로그레시브 메탈 드럼의 거목 마이크 포트노이의 맹렬한 드럼 불꽃이 작렬한다. 또한 다양한 성향의 음악이 포진된다. 피아노와 현악 연주가 돋보이는 파워 발라드 <픽션(Fiction)>과 <산성비(Acid Rain)>, 프로그레시브 메탈 <나를 구원해줘요(Save Me)> 등등. 다양성으로 나아가는 세븐폴드의 장르적 확장력은 이들이 메탈을 중심에 두고 매 앨범마다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흡수하면서 진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그들 음악의 놀라운 다양성의 한 예로 <천국의 작은 조각(A Little Piece of Heaven)>을 들 수 있다. 관현악을 동원한 뮤지컬 음악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별 노래가 흘러나온다. 사망한 친구 레브를 추모하는 곡. 이제 사랑하는 너를 놓아줄게. 너는 너무 멀리 떠났구나.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겠지. 너는 영원히 우리 안에 살아 있을 것이야. 너를 사랑해. 죽음 앞에서, 이별 뒤에서 음악이 사람을 안아준다.

마지막 노래, 마지막 요청
완벽한 한 곡이 아직 남아 있어

때때로 나는
내 마음속의 한 곳
네가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곳
그곳을 찾으려고 노력하는데
그곳에서 넌 영원히 깨어 있겠지

사랑하는 사람 없이 내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책장이 넘겨지듯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네
불타오르네
내 마음 속에 네가 있던 그곳, 그때

너를 사랑해
너는 떠날 준비가 되었구나

고통은 강한 것 불쑥 솟아나는 것
신이 허락할 때 다시 널 볼 수 있겠지
너의 고통이 사라지고 있어
너의 손에서 결박이 풀리고

너무 먼 곳에
너는 너무나 먼 곳에
너무나 먼 곳에서 나를 기다리는구나
―<너무 먼 곳에(So Far Away)> 부분

음악이 생의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지나간 삶을 두고 외로웠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으리라. 음악 때문에 나는 이곳에 도달한 것이다. 음악 때문에 ‘질병 같은’ 인생을 견딜 수 있었다. 이현승 시인의 작품에서 시어 ‘의미’를 음악으로 바꾸어 본다. “암술에 도착한 꽃가루” 같은 “하나의 기적”이 음악이다. “막 암술에 도착한 꽃가루 같은” 음악이 나를 기다린다.

나는 전생을 믿지 않고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나지 않을 만큼
철두철미한 현실주의자이지만
코끝 벌름거리게 하는 간지러운 봄바람에 날려
막 암술에 도착한 꽃가루 같은 생을 생각하니
삶이란 늘 의미에 목말랐던 것이다.

미래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란 속류 쾌락주의자이며
진정한 미래주의자는 비관주의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꽃가루만큼이라도 의미가 필요하다면
처세의 철학보다는 파산이나 암 선고가 더 빠를 것이다.

암술에 도착한 꽃가루란 하나의 기적이다.
다시 해 볼 것도 없이.
―이현승, <은유로서의 질병>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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