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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때문에 곤욕치른 그 굿당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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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박물관의 발견]은평뉴타운 금성당 샤머니즘박물관 관람기…편견 버리면 따뜻한 햇살 얻는 곳. 주민 참여 프로그램 기대

구파발 금성당 샤머니즘 박물관. 아파트 숲속에 자리한 한옥이 정감 있다.

구파발 금성당 샤머니즘 박물관. 아파트 숲속에 자리한 한옥이 정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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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아파트에 둘러 쌓였지만 마당에는 햇볕이 가득했다. 마루에 걸터 앉아 한참동안 멍하니 볕을 쬐었다. 서울 은평뉴타운 우물골 한가운데 자리한 19세기 한옥. 원래는 세종대왕의 육남이자 단종 복위를 위해 애쓰다 죽은 금성군을 모시는 굿당. 지난 해 5월 '샤머니즘 박물관'이라는 다소 거창한 이름으로 새단장한 곳이다.

지난 해 이곳에는 외신 기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사상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 등장했던 '오방낭'이 최순실의 아이디어라는 사실이 공개된 직후다. 굿, 무당 같은 한국의 민속 신앙이 궁금했던 외국의 기자들이 '코리안', '샤머니즘', '뮤지엄' 등의 키워드로 구글 검색해서 찾아왔으리라. 영국, 일본, 미국 기자들의 취재 요청이 줄을 잇자 최순실과 털끝 하나 관련없는 박물관 관계자들은 당황했다. '죄없는' 관계자들은 기자들에게 무속신앙이나 유물에 관한 건 얼마든지 얘기해 줄테지만, 최순실과 연관 짓지는 말아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샤머니즘 박물관은 은평구에 사는 기자가 마을 도서관을 오가다 지나치는 곳이다. 하지만 발을 들여놓기가 쉽진 않았다. 기자를 관두고 민속학 공부하다며 영국으로 떠난 후배가 "주민 입장에서 박물관 감상기를 써달라"는 카톡 메시지를 주지 않았다면 이곳에 올 수 있었을까. 게다가 '굿당'이라고 하니 왠지 모를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영화 '곡성'의 한 장면. 무당, 굿당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영화 '곡성'의 한 장면. 무당, 굿당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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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렇다. 굿에 대해, 무당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건 어디까지일까? 박물관을 함께 둘러본 와이프는 이 곳의 첫인상을 묻자 "무섭다"고 했다. 방마다 가득한 굿용 집기와 부적, 알록달록한 종이장식 때문이다. 아마도 쭉 찢어진 눈의 무당이 '살(殺)'을 날리는 저주의 굿판을 떠올렸을 테지. 와이프 왈 "영화 '곡성'에서 본거네".

대체 이 편견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전설의 고향 같은 드라마에서 굿당은 주로 저주와 죽음, 귀신이 깃들어 있는 음습한 장소로 그려진다. 어린 시절 보던 수사반장 같은 드라마에선 무당이나 점쟁이는 항상 나쁜 계략을 꾸미는 존재였다.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려 했던 일제 강점기 식민지 교육 때문일 수도 있고, 박정희 집권 시절 근대화에만 치중해 과거를 소홀히 한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다 최순실 같은 자가 '오방낭'으로 국정농단까지 했으니…. 사람들이 민간신앙을 바라보는 눈이 고울리 없다.
이같은 편견을 해결할 해답을 세살배기 아들이 가르쳐줬다. 아들은 샤머니즘박물관 마당의 고운 흙이 마음에 들었던지 한웅큼 파헤쳐서 엄마, 아빠한테 뿌려대며 즐거워했다. 아이에게 이곳은 단지 따뜻한 놀이터일 뿐이었다. 옛날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일 년에 몇 번씩 굿을 하면 복을 빌고 맛있는 먹거리를 나눠 먹던 곳. 저녁이면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는, 나랑 똑같은 사람이 사는 집.

유물목록 정리가 한창이다.

유물목록 정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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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방문했을 때는 관계자들이 흰종이를 바닥에 깔아두고 소장 유물을 촬영하고 있었다. 다음 주에 있을 공립 박물관 승인을 위한 심사를 대비한 유물 목록 정리를 은평구청 장진수 주무관과 황철균 연구원(동국대 사학박사과정 수료) 두 분이 진행하고 있었다.

장 주무관의 설명을 들으며 박물관 내부를 둘러봤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근 아파트에서 가끔 민원이 들어온다고 한다. 주민들이 여름에 아파트 창문을 열어놓고 자다가 박물관쪽에서 풍경소리가 들려오니 어쩐지 으스스하다고 민원을 넣은 것이다. 산사에서 들리는 소리는 괜찮지만 굿당에서 들리는 소리는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이라나.

처마에 매달린 풍경마다 소리를 줄이기 위해 청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놓은 모습이 어쩐지 서글프다. 특정종교(?)를 믿는 어떤 방문객은 박물관이 굿당이었다는 걸 알고나선 황급히 신발을 벗고 건물 밖으로 뛰어나가기도 했단다. 지난해 개관행사로 굿을 했을 때는 관계자들이 인근 아파트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소음에 대한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청테이프로 막아놓은 풍경.

청테이프로 막아놓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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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박물관을 좋아하는 이들이 더 많다. 박물관 뒤편 아파트에 사는 한 주민은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당이 마치 자신의 집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뉴타운 개발 이전에 살았던 한 원주민은 박물관을 둘러보며 어린 시절 이곳에서 굿을 할 때 떡을 얻어먹었던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단다.

박물관은 전통적인 한옥 모양을 하고 있다. ㄷ자 모양의 구조로, 가운데 마루에 제단이 있고 양쪽으로 작은 방들이 늘어서 있는 구조다. 방마다 '제주 무속', '서울 무속'하는 식으로 지역별 굿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현재 방 별로 전시된 국내외 유물을 합치면 2000여점 정도다. 그 10배가 넘는 유물이 별도의 장소에 보관돼 있다. 뒤뜰의 별채는 국내외 민속학 포럼 등 이벤트용으로 쓴다.

전국 지역별 굿당의 모습을 재현했다.

전국 지역별 굿당의 모습을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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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은 개선할 여지가 많아 보였다. 좁은 방마다 여러 유물을 채워 넣다 보니 유물 하나하나에 숨은 사연을 알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또 서양인 얼굴의 마네킹에 무복을 입혀놓은 건 아무리 봐도 어.색.하.다. 주민들의 인식개선을 위한 참여 프로그램도 요원하다. 박물관측은 앞으로 문풍지 바르기 체험 등 주민 참여형 이벤트를 늘릴 예정이라고 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전통 한옥이 가진 특장점을 백분 발휘해 보는 걸 어떨까. 이곳은 2011년 '불굴의 며느리'라는 드라마의 촬영장소로 쓰이기도 했다. 그만큼 담백한 한옥의 매력이 충만한 곳이다. 요즘 한복 입고 기념 사진 찍는 젊은이들이 많으니, 10~20대를 대상으로 한복 촬영 이벤트를 열어도 좋지 않을까. 따스한 볕이 내리쬐는 이곳에 우리 민속신앙에 대해 어떠한 편견도 없는 아이와 청년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해외 샤머니즘 관련 유물도 전시돼 있다.

해외 샤머니즘 관련 유물도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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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뉴스본부 박충훈 기자 parkjov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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