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찻잔에 불어넣은 혼, 마치 도깨비처럼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찻잔에 깃든 숨결의 서사시
사물과 사물의 상호 연관성 주목
서양적 재료 안에 동양적 사상 담아

이동수 화백 [사진=김세영 기자]

이동수 화백 [사진=김세영 기자]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화제 속에 종영한 텔레비전 드라마 '도깨비'에는 이승을 떠나기 전에 머무르는 찻집이 등장한다. 조그마한 찻잔에 담긴 차(茶)를 다 마시고 나면 이승에서의 기억이 사라진다. 극중 저승사자는 어두운 저승길을 앞둔 이와 서로 마주앉아 깊은 대화를 나눈다.

여기 어둠 속에 찻잔 하나가 빛을 낸다. 서양화가인 이동수 화백(51)은 '플로우-보울(Flow-Bowl)'시리즈를 통해 하찮은 그릇 한 점에도 너와 나의 연(緣)이 있다고 말한다. 이 화백은 "사물 자체를 분석과 주의(attention)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부분보다 전체' 혹은 사물과의 상호 연관성에 주목한다. 모든 요소들이 서로 관련지어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고 했다.
이 화백의 세계관은 차 문화와 관계가 깊다. 찻잔을 선택한 이유도 평소 차에 대한 관심이 컸던 데 있다. 그는 "차를 마시는데 문득 찻잔의 조형미가 눈에 들어왔다. 작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그릇이 지닌 상징과 의미가 좋았다. 발전하다보니 질그릇, 일본 차사발도 연구하기 시작했다. 다른 소재로는 그림을 잘 그리지 않는다"고 했다.

Flow-Bowl, 65.1×45.5㎝, Oil on canvas, 2017

Flow-Bowl, 65.1×45.5㎝, Oil on canvas, 2017

원본보기 아이콘


그의 작품은 사물에 혼(魂)이 깃든다는 도깨비와도 같다. 또한 인생의 긴 숨결이자 역사를 담은 거대한 한 편의 서사시다. 더구나 그의 작업실은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의 선사유적박물관을 마주보고 있다. 이곳은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신석기인들이 살던 호수지역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배경 역시 긴 시간을 품은 듯하다. 깊이감이 있다. 우주처럼 칠흑 같이 어두운 색을 띠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간의 연속성과 공간의 무한함을 담기 위해 배경색을 열 번 가까이 덧칠한다. 완성된 배경 위에 슬며시 그릇의 형상이 나타난다. 언뜻 보면 입을 넓게 벌린 찻잔이 화폭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흐르는 듯, 스치는 듯 마치 살아 움직인다. 그릇을 순간 포착한 느낌이 든다. 세상 어디에나 있지만 또 어디에도 없는 도깨비처럼 시공간을 초월한다.

이 화백은 "그릇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공간 속을 흐르는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 작품은 보는 사람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감정의 흐름을 담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주된 그릇은 신석기시대 산물인 빗살무늬토기처럼 요철(凹凸)이 매우 섬세하다. 그는 "그릇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붓질을 한다. 선을 대고 한 번에 하면 세련미는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도자기를 빚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며 웃어보였다.

Flow-Bowl, 130.3×89.4㎝, Oil on canvas, 2016

Flow-Bowl, 130.3×89.4㎝, Oil on canvas, 2016

원본보기 아이콘


Flow-Bowl, 90.9×65.1㎝, Oil on canvas, 2017

Flow-Bowl, 90.9×65.1㎝, Oil on canvas, 2017

원본보기 아이콘


서양의 재료를 택했지만, 작품 안에는 동양적 세계관을 담는다. 그래서인지 그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지난 2010년부터 아트파리, 비엔나 페어, 스콥 바젤, 콘텍스트 마이애미, 슈트가르트 아트페어, 아테네아트, 아트뉴욕, LA아트쇼 등 유수한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팝아트로 대변되는 미국보다 전통을 중시하는 유럽에서 반응이 더 좋았다.

이 화백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 찻잔에 이야기를 담듯 마주앉아 교감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공명(共鳴) 현상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악기의 한 줄을 건드리면 공명에 의해 다른 줄이 울리게 되듯, 모든 것은 서로에게 공명을 일으킨다"고 했다.

지난 1일 문을 연 이 화백의 '숨결의 시(始)전'은 28일까지 서울 용산구 한남동 갤러리조은에서 열린다. 작가의 신작 스물세 점을 감상할 기회다.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우원식,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당선…추미애 탈락 이변 尹 "부처님 마음 새기며 국정 최선 다할 것"…조국과 악수(종합2보) 尹 "늘 부처님 마음 새기며 올바른 국정 펼치기 위해 최선 다할 것"(종합)

    #국내이슈

  • "학대와 성희롱 있었다"…왕관반납 미인대회 우승자 어머니 폭로 "1000엔 짜리 라멘 누가 먹겠냐"…'사중고' 버티는 일본 라멘집 여배우 '이것' 안 씌우고 촬영 적발…징역형 선고받은 감독 망명

    #해외이슈

  •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 김 여사 수사 "법과 원칙 따라 제대로 진행" 햄버거에 비닐장갑…프랜차이즈 업체, 증거 회수한 뒤 ‘모르쇠’ '비계 삼겹살' 논란 커지자…제주도 "흑돼지 명성 되찾겠다"

    #포토PICK

  • [르포]AWS 손잡은 현대차, 자율주행 시뮬레이션도 클라우드로 "역대 가장 강한 S클래스"…AMG S63E 퍼포먼스 국내 출시 크기부터 색상까지 선택폭 넓힌 신형 디펜더

    #CAR라이프

  • 세계랭킹 2위 매킬로이 "결혼 생활 파탄이 났다" [뉴스속 용어]머스크, 엑스 검열에 대해 '체리 피킹' [뉴스속 용어]교황, '2025년 희년' 공식 선포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