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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AI 사장님, 구조조정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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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일 산업부장

이정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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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빈번하게 목격되는 현상이다. 식사자리든 술자리든 기업 중역들은 다들 이 얘기뿐이다. 이세돌, 알파고, 인공지능(AI), 그리고 제네시스 EQ900. 대개는 바둑으로 대화가 시작된다. 한때 '바둑 신동'이었던 이들이 분위기를 이끈다. '바둑 하수'들은 경청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슬그머니 고수의 인식표를 꺼내든다. 사실, 나 아마 5급이야. 상대방이 씩 웃는다. 나는 아마 3급.

민망해진 5급은 서둘러 화제를 바꾼다. 현대차의 제네시스 EQ900이다. 기업 중역들이 업무용 차량으로 선망하는 브랜드다. 주문이 쇄도해서 지금 계약해도 몇달을 기다려야 하는 '희귀템'이다. 아마 5급이 품평을 늘어놓는다. "승차감이 좋고 소음도 적지만 압권은 무인자율 운행이지.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앞차와의 안전 거리를 유지하면서 스스로 주행하다가 과속 카메라가 있으면 알아서 속도를 늦추거든." 가만히 듣고 있던 아마 3급이 거든다. "조만간 운전기사가 사라지겠군."
머잖아 사라질 직업이 어디 운전기사뿐일까. '세기의 바둑대결'에서 알파고가 이미 입증했다. 자율주행은 인공지능의 한 단면일 뿐이다. 예전에 체스 챔피언을 꺾었던 IBM의 인공지능 '왓슨'은 환자들의 정보를 분석해 질병 정복의 기틀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골드만삭스의 금융분석 인공지능 '켄쇼'는 50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애널리스트가 40시간에 걸쳐 할 일을 수분 내 해치운다. 구글의 인공지능 '딥드림'이 그린 추상화 29점은 9만7000달러(약 1억6000만원)에 팔렸다. 주식 시세나 기업 실적에 대한 기사를 쓰는 로봇 기자도 등장했다(아시아경제도 '아경봇'이라는 바이라인의 로봇 기자가 주식 기사를 쓴다)

그렇다면 기업 경영은 어떨까. 조직의 가치를 창출하고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며 혁신을 일궈내야 하는 기업 경영도 인공지능에 의존할 수 있을까. 예컨대 이런 자문을 인공지능에 구한다면? "스마트폰 시장이 정체되고 있는데 어디서 활로를 찾아야 하나" "조선업이 어려운데 사양의 징후인가 일시적 위기인가" "적자가 예상되는데 구조조정을 해야 하나" 하다못해 이런 물음도. "직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얼마나 줘야 하나." 과연 인공지능은 어떤 해답을 내놓을까. 다시 말해, 인공지능을 사장실에 앉혀놓고 기업 경영을 맡길 수 있을까.

시간을 거슬러 2010년 5월6일 오후 2시42분. 미국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갑자기 폭락하더니 불과 몇 분 만에 1000포인트 가까이 빠졌다. 그 바람에 자산 1조 달러 이상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6개월 가까이 조사를 벌인 결과 초단타매매 프로그램들이 충돌해서 발생한 문제였다. 그때 그 공포의 폭락을 막은 것은 인간이었다. 시카고 상업거래소가 5초간 모든 거래를 중지시키면서 대혼란은 종식됐다. 인공지능이 제 아무리 빠르고 정확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인간의 판단과 선택과 결정이 필요한 법이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은 희로애락이 없다. 알파고가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면서 전자담배를 피웠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는 '인간 코스프레'를 하는 인공지능의 비인간성을 꼬집는다.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은 기업 경영의 목적과 대의를 '행복'으로 규정했다. 희로애락이 없는 '인공지능 사장'이 그 같은 목적과 대의를 실천할 수 있을까. 스스로 감동하지 못하면서 시장과 소비자를 감동시킬 수 있을까.

인공지능 덕분에 기업 중역들이 제네시스 뒷자리에 편하게 몸을 실을 수 있지만, 자율주행이라는 가치를 부여해 제네시스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한 것은 결국 인간이다. 괴테의 말을 빌리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기업 경영의 방향은 더욱 감성적이고 창의적이어야 한다. 더더욱 인간적이어야 한다. 사장실을 인공지능에 빼앗기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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