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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정치인의 '수호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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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필수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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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란 섬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동일하게 교육을 받으며 서로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이 이뤄진다. 이 섬에는 재산권이나 화폐가 없으며 모두가 똑같은 집에서 살아간다. 누구나 동일하게 일하고 동일하게 즐기며, 무료 시장에 농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누구나 2년 동안 농사를 지어야 하기도 한다.

토머스 모어가 소설 유토피아를 통해 그린 이상세계의 모습이다. 이 소설 덕에 지금까지도 유명하지만 모어는 정치가로도 잘 나가던 인물이었다. 영국왕 헨리 8세의 최측근으로 신임을 받으며 대법관까지 승진했다. 당시 영국 외교를 전담하고 왕과 신하들의 연결고리 역할까지 했다.
정치뿐 아니라 종교 문제에서도 모어는 헨리 8세의 가장 중요한 조언자였다. 모어는 헨리 8세를 대신해 루터의 종교개혁 세력과 논쟁에 앞장섰다. 심지어 대법관 시절, 본인이 직접 나서서 개신교도들을 잡아 고문하고 개신교도 6명의 화형에 적극 개입하기도 했다.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이 이뤄진다는 유토피아는 글자 그대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었던 셈이다.

이 같은 로마 카돌릭에 대한 충성은 모어를 더욱 잘나가게 했다. 모어와 루터의 논쟁 후 교황이 헨리 8세를 크게 칭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모어의 발목을 잡았다. 헨리 8세가 캐서린 왕비와 이혼을 강행하느라 로마 교황청과 대립을 하면서 모어도 몰락의 길을 걸었다.

국왕의 이혼을 반대한 모어는 수족이 숙청되는 등 정치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왕과 관계는 돈독한 상태를 유지하는 듯했지만 새 왕비 앤 볼린의 대관식에 불참하면서 정적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궁지에 몰린 모어는 앤 볼린을 새 왕비로 인정하는 등 어느 정도 고개를 숙였지만 국왕이 교회의 수장이 되는 것에 반대, 결국 1535년 교수형을 당했다.
모어가 사형을 당한 지 465년이 흐른 2000년 로마 교황청은 모어를 정치인과 공직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교황청이 새삼스레(?) 모어를 왜 수호성인으로 '시성'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권의 핵심에 있을 때 모어의 모습은 요즘 정치인과 많이 닮기는 했다.

유토피아의 사회상을 전달하는 주인공 라파엘 히슬로데아우스는 '헛소리하는 사람'을 뜻한다. 모어는 '어디에도 없는 섬'에 대한 '헛소리'를 책으로 써낸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소설을 헛소리로 풍자했던 만큼이나 그의 생애 역시 자신이 그려낸 이상사회와는 거리가 있었다.





전필수 증권부장 phils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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