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원대한 것에 대한 욕심은 중ㆍ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점점 사라졌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대학원 공부와 유학, 구직까지 돌이켜보면 입학지원서든 채용원서든 심지어 논문이든 보고서든 문제는 큰 얘기에 얼마나 제대로 된 디테일을 담아낼 수 있느냐였다.
당시 보급작전을 담당한 파고니스 병참사령관 역시 '산을 옮겨라'라는 책에서 걸프전 승리의 관건은 무려 30개국 출신의 70만 다국적군이 사막에서 작전을 펼치기 위해 어느 부대가 언제 어디서 정확히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하고 이를 하나하나 차질 없이 챙겼던 것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군사학에서 유명한 명제가 나온다. "아마추어는 전략을 논하고, 프로는 병참을 논한다."
또 다른 예는 아폴로계획이다. 흔히 과학기술정책에서 아폴로계획은 최고 정치지도자가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추진력 있게 국가 자원을 투입하여 전무후무한 과학기술적 성과를 이뤄낸 예로 알려져 있다. 그 유명한 케네디 대통령의 1961년 의회 연설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인류의 프런티어 정신을 고양하고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과학기술 투자를 촉구하는 카리스마적 호소로 유명하다. 그러나 러멜트에 따르면 아폴로계획은 대단히 현실적이었고 목표 역시 근접적인 계획이었다.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로 우주경쟁에 뛰어든 미국이 그냥 그보다 더 큰 목표를 던지고 쫓아간 것이 아니라 미국의 로켓 기술과 자원에 대한 전문가의 정확한 판단을 기반으로 "이길 수 있는" 경쟁을 제안한 것이었다.
총 40만명이 10여년에 걸쳐 투입된 이 계획은 사실 과학기술 프로젝트라기보다 대규모 조직경영 실험에 더 가깝다. 생각해보면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D데이를 기점으로 소급해서 기술을 개발하고 로켓을 만들고 우주인을 훈련시키기 위해 정확히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마어마한 디테일을 조율하는 과정이 아니었겠는가.
201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분야 중장기 계획은 미래창조과학부 39개, 산업통상자원부 24개, 농림축산식품부 15개 등 19개 중앙행정기관에 총 116개가 존재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중 3, 4개 계획 작성 과정에 자문으로 참여했는데 대부분 전략적 방향이나 핵심어를 두고 큰 얘기만 했다. 정작 제대로 된 디테일을 가져간 적이 있었는지 반성하는 중이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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