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시절, 개발의 상징처럼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청계고가도로 등 100여개 고가도로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서울의 도심 여기저기에는 마치 지역개발의 자부심처럼 동네의 이름을 붙인 고가도로가 생겼다.
그러나 이 같은 패러다임은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2002년 전농동 '떡전 고가차도'를 시작으로 2009년까지 11개 고가도로가 철거됐고 시는 2009년 12월 교차로 소통용 고가도로 12곳에 대한 추가철거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고가도로가 시설 노후화로 인한 안전문제, 막대한 유지ㆍ보수비용, 고가 아래 지역의 슬럼화 경향, 도시미관과 생활환경에의 악영향 등 문제를 나타냈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었다. 특히 지역 간 단절로 발전을 억제시키는 등 부작용도 컸다.
일부 고가가 철거되면서 차량통행이 오히려 줄어들고 고가도로에 눌려서 사용하지 못했던 칙칙하고 컴컴한 공간이 활기차고 밝은 공간으로 되살아날 뿐만 아니라 지역 상권도 활기를 되찾게 된 것은 고가차도의 이 같은 문제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본격적으로 고가차도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게 된 것은 청계 고가차도를 철거한 후였다. 청계천을 '환경 친화적'으로 복원하고 난 후 고가차도 철거에 대한 요구가 쇄도했다. 그래서 도심지역에 설치된 광희고가와 회현고가 차도가 철거되고 미아고가, 언남고가, 홍제고가 등도 잇따라 철거됐다.
이제 사람들은 과거처럼 빠르게 이동하는 것보다 쾌적한 환경을 더 많이 원하는 듯하다. 좋은 공기나 경치 등과 같은 삶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게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서 고가도로는 어느덧 도심의 흉물,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게 됐다.
앞으로 약수고가도로도 곧 철거될 것이다. 개발의 광풍에서 산업화의 흐름을 주도한 고마운 '보물단지'가 이제는 도심의 '애물단지'로 전락해 어느새 역사 속으로 퇴장하고 있다. 고가도로가 한때 '순기능'을 수행했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변화를 피할 수는 없고, 피해서도 안된다. 고가도로에 미련 없이 퇴장하기 바란다는 말을 해 주고 싶다. 그래서 햇살 좋은 어느 날, 뻥 뚫린 하늘을 보며 전망 좋은 약수사거리를 쌩쌩 달리고 싶다.
최 창 식 서울 중구청장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