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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저자]"당신은 나의 소슬한 종교"..아버지께 바치는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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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락 시인의 에세이 "고맙습니다 아버지"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책과 저자]"당신은 나의 소슬한 종교"..아버지께 바치는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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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사인 신현락 시인이 쓴 '고맙습니다, 아버지'(지식의 숲 출간)는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헌사이자 사부곡이다. 지금 많은 아버지들이 가정에서조차 외로운 섬처럼 떠 있다. 또 직장에서는 내몰릴 위기에 처해 힘겨운 싸움을 벌여가고 있다. 그러나 아들들은 모든 아버지가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 조창인의 '가시고기'의 주인공과 다를 게 없다는 걸 제대로 모른다. 더욱이 뜨거운 부성애를 깊이 이해하지도 못 한다.

따라서 아버지에 대한 아들들의 헌사는 여전히 빈약할 수 밖에 없다. '고맙습니다, 아버지'는 잔잔한 에세이로 펼쳐진다. 머나먼 별빛을 쫓아가 듯 풍화된 기억으로 아버지의 남루함속에 깃든 부성애, 삶의 의지를 잔잔하게 더듬어가고 있다. 에세이속의 아버지는 외롭고, 힘겹고, 초라하다. 그런 아버지를 애써 어떤 수식이나 미화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반추함으로써 세상의 평범한 아버지와 아들들에게 '화해'라는 다리를 놓아 준다.
 
"아버지는 나에게 한 채의 소슬한 종교다. 세상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인간관계로 괴로울 때, 이것저것 포기하고 싶을 때, 광야에 혼자 버려진 느낌이 들 때마다 나는 고독한 사원을 찾곤 한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단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성숙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자식을 키우면서 자주 느끼고 있다."

"나의 뒷모습이 아버지의 뒷모습을 닮아가기를......, 또한 나는 소망한다. 아버지의 오래된 미래인 나의 뒷모습이 자식들에게 아름다운 삶의 지표가 되기를......"(본문 중에서)

신 시인은 책을 쓴 배경에 대해 "우리는 한 때 아버지, 즉 기성세대가 극복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부정하는데 급급했다"며 "중년이 돼서야 비로소 평범한 아버지들에게도 우리가 알 지 못했던 삶의 미덕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이어 신 시인은 "우리 세대가 '사오정', '오륙도'로 전락해 허덕일 지 언정 우리 또한 열심히 살았고, 또 열심히 살려 한다는 걸 아들들이 따뜻하게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책을 썼다"고 덧붙인다.
시인의 아버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마흔 여섯에 도시로 나왔다.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막노동뿐, 자식들을 제대로 공부시킬 힘도 없었다. 더욱이 연좌제에 걸려 고통을 당했다. 형제들은 검검고시로 학교과정을 치뤘다. 아버지는 늘 외로움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삶을 견뎌냈다. 늙어서는 한 푼의 재산을 남겨줄 수 없을 만큼 초라했지만 결코 비관하지도 달관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렇게 우리들의 평범한 아버지로 살다가 떠났다.

시인은 강원도 평창의 시골학교로 첫 발령을 받고 떠나던 날 "힘들 때마다 손바닥에 참을 인(忍)자 세번을 쓰거라"는 아버지의 당부를 평생 잊지 못 한다. 시인에게 교단은 성스럽지 만은 않았다. 그러나 30여년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안 어느 덧 장성한 자녀를 둔 아버지가 돼 있다.

"아버지들은 영화 '7번방의 선물'에 나오는 아빠처럼 목숨도 내 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요즘 함께 놀아주고, 함께 여행 다니며, 서툴게나마 밥도 지어주는 아빠들이 TV속에 자주 나온다. 그런 아빠들이 자녀와 함께 휴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건 수많은 '아버지'들의 희생 덕분이다. 외롭고 힘들어도 우리를 지켜주며 비관하지 않았던 아버지들을 새롭게 기억하고 싶다."

신 시인은 "아버지에게 가장 큰 힘은 자식"이라며 "아버지로서 자식들에게 우리의 삶을 따르라고 강요할 수는 없으나 갈등과 단절로 인한 상처만은 함께 이겨내자고 손을 내밀고 싶다"고 술회한다.

신 시인의 에세이속에는 아버지 말고도 50대라면 떠올릴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득하다. 초등학교 때 국민교육헌장을 통째로 외우던 일, 채변봉투에 똥을 담아가던 일, 새마을담배 값 20원, 풀피리, 겨울날 썰매장이 된 논에서 놀던 일, 쥐잡기 등 여러 향수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책을 넘기다 보면 우리 시대의 평범한 아버지들에게 감사해야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세상에 가장 외로운 이름, 아 버 지 !!"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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